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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비 역사학의 최근 활동과 주요사건

    관리자 2017-09-21 17:25 2918

     

           사이비 역사학의 최근 활동과 주요 사건

                                                                        

                                                                          기경량


     

    사건 1. 하버드 대학 ‘고대 한국 프로젝트’ 지원 사업의 좌절

     2014년 3월 결성된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설립 직후 동북아역사재단의 ‘고대 한국 프로젝트(EKP : Early Korea Project)’ 지원을 문제 삼았다. ‘고대 한국 프로젝트’는 하버드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에서 진행하던 사업이었다. 한국의 고대사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를 영문으로 발간하여 세계 학자들에게 알리는 것을 목표로, 2007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2014년 초 발간된 《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이라는 책이 문제가 되었다. 국민운동본부는 이 책의 내용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따르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하였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 세워진 한사군 중 낙랑군을 한반도 북부 평양 지역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국민운동본부는 지원 사업 폐기를 주장하며 국회의원 등과 연계하여 동북아역사재단에 전방위로 압력을 행사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2014년 4월 감사원에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감사를 청구한 것이다. 감사원이 이 청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동북아역사재단은 상기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는지 결국 사업 지원을 중단해 버렸다.

    서양 학계에서 한국사는 중국사와 일본사에 비하여 위상이 크게 낮으며 비주류인 분야이다. 서양 학자 중 한국사 전공자의 수 역시 매우 적다. 중국사·일본사 전공자에 대한 수요가 한국사 전공자에 대한 수요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한국사 수업을 할 필요가 생겨도 전공자가 없으니 중국사나 일본사 전공자가 가르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결과 서양에서는 그동안 축적된 한국 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일본사의 시각에서 본 한국사, 중국사의 시각에서 본 한국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대 한국 프로젝트’는 서양 학계에 한국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한국사 콘텐츠를 보급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실제로 이 사업은 대내외적으로도 매우 의미있고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비뚤어진 역사관을 가진 사이비 역사 추종자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인하여 결실을 채 얻기도 전에 허무하게 좌초되고 말았다. 한국 고대사학계와 세계 역사학계를 가늘게 이어 주었던 연결선이 끊어져 버린 셈이다.

    국민운동본부는 낙랑군이 하버드 대학교 고대 한국 프로젝트팀이 평양 지역에 있었다고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문제 삼아 사업을 좌초시켰다. 그러나 낙랑군 재평양설은 전 세계의 역사학계에서 인정되고 있는 통설이다. 고대 한국 프로젝트팀 역시 그러한 통설에 기반하여 연구서를 출간하였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통설을 책에 실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급기야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결국 한국 정부가 비이성적인 쇼비니즘 단체에 휘둘리고 있음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꼴이 되어 버렸다. 이 사건은 외국의 역사학자들에게 매우 나쁜 인상을 심어 주었다. 한국 정부와 역사학계에 대한 국제 역사학계의 인식이 크게 악화되었을 뿐 아니라 국격에도 큰 손상이 발생하였다. 사이비 역사가와 그 추종자들은 사업을 중단시켜 놓고 자신들이 ‘애국적 의거’를 하였노라 의기양양해 하였지만, 실상은 ‘나라 망신’이었던 것이다.

     

    사건2. 김현구 교수와 이덕일의 명예훼손 재판

     

     

    2016년 2월 5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재판부는 대중 역사 저술가 이덕일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이덕일이 자신의 책에서 김현구 전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식민사학자로 규정한 데 대해 김현구 교수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 결과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전제로 피해자를 식민사학자로 규정했다"고 하였고, "피고인의 학력과 경력 등을 보면 피해자가 임나일본부설을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지 않았음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역사학자인 피고인의 영향력을 볼 때 명예훼손 정도도 매우 크다"며 "그럼에도 자신을 식민사학 카르텔의 피해자로 포장하고 이 사건의 논점을 역사 논쟁으로 흐리려 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2016년 11월 3일의 항소심에서는 원심을 깨고 무죄가 선고되었다. 재판부는 이덕일이 자신의 책에서 “김 교수가 책에 ‘백제는 야마토 정권의 속국·식민지이고, 야마토 정권이 백제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고 주장했다”고 한 부분에 대하여 “사실 적시라기보다 의견 표명이라고 봐야 한다”며 무죄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이덕일 주장의 타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학문의 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의사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여기에서 법리적인 부분을 논할 여유는 없다. 그보다 역사 해석의 문제가 어째서 법정으로까지 가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이덕일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2014)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김현구를 임나일본부설 지지자로 매도하였다. 이덕일 주장의 근거는 김현구가 저술한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2010)라는 책의 내용이었다. 이덕일에 따르면 김현구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고 한다.

     

    ① 한반도 남부에는 실제로 임나일본부가 있었다.

    ② 그런데 임나일본부는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아니라 백제가 지배하였다.

    ③ 백제를 지배하는 것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터무니없고 악의적인 모함이다. ①과 ②까지는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김현구가 ③의 주장을 했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허위·날조의 영역에 속한다.

    김현구는 임나일본부설을 깨뜨리기 위하여 평생을 연구해 온 학자이다. 김현구가 수행한 연구의 핵심은 임나일본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일본서기》의 내용을 우리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가야 지방에 군사적으로 영향을 행사하였던 ‘임나일본부’라는 것이 사실은 일본과 무관한 백제의 군사령부였다고 보는 것이다. 가야 지방에 대한 백제 근초고왕의 군사 정벌과 영향력 행사를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한 것처럼 왜곡하여 《일본서기》에 기록하였다는 것이 김현구설의 요지인 것이다.

    이러한 김현구의 견해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지나치게 백제 중심적 접근법이어서 가야의 역할과 주체성을 과소평가하였다는 비판이 제시된 바 있다. 가야 입장에서 보면 왜의 군사령부든, 백제의 군사령부든 모두 가야의 주체적 성격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다만 김현구의 설이 기존의 임나일본부설을 깨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제시되었다는 것만큼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덕일은 놀랍게도 이러한 김현구의 학설을 ‘임나일본부설 추종’으로 규정하고, 김현구를 식민사학자라 비난하였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다. 이덕일은 김현구의 저서 내용을 이리저리 짜깁고, 악의적으로 오독하였다. 그리하여 김현구를 임나일본부설의 지지자로 몰아가는 한편 국내 역사학계 전채가 뿌리째 식민사관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본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하였다.

    학문의 세계에서 비판이 제시되는 것은 당연하고, 또 권장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문적 비판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의견을 정확히 이해하고 인용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본 의도를 비틀고, 텍스트의 짜깁기를 통하여 왜곡하여 몰아가는 것은 정상적인 학문 행위라 볼 수 없다.

    이덕일이 이처럼 상식에서 벗어난 행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역사학계 전체를 식민사학이라는 이미지로 덧씌우는 것과 동시에 거기에 대항하는 정의롭고 외로운 역사학자의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기 위해서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황당한 것은 이덕일 본인이야말로 과거 임나일본부설과 매우 흡사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는 것이다.

     

    ……왜의 위치는 마한과 진한, 변진의 남쪽, 즉 한반도 남부이다. 따라서 왜는 중국의 삼국시대인 3세기까지는 한반도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한반도에 있었던 왜는 백제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 두고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맞서 싸웠던 강력한 정치집단이었다. 그간 일본인들이 왜를 일본열도 내로 비정하면서 생겼던 모든 모순은 왜를 한반도 내의 정치집단으로 이해할 때 풀리게 된다. ……전남 나주 반남고분군은 고대 한반도 남부지역을 지배했던 왜라는 정치세력이 남긴 민족사적 유산이다"

                                     이덕일․이희근, 1999,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 김영사, 21~27쪽.

     

    이상의 여러 기록들은 전남 나주 일대에 있던 왜 세력이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한반도의 패권을 다투다가 패배해 일본열도로 이주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덕일, 2005 《교양 한국사》1, 휴머니스트, 231~232쪽.

     

    이덕일은 1999년 이희근과 공저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한국이나 일본의 평범한 역사학자가 이런 말을 입에 올리거나 글로 발표했다면 당장 임나일본부설 추종자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실제 임나일본부설과 흡사한 주장을 펼치던 사람이 오히려 평생 동안 학문의 최전선에서 임나일본부설과 싸워 왔던 노학자를 식민사학자요, 임나일본부설의 추종자라고 모함하며 책을 팔아 금전적 이득을 얻는 행태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역사 문제를 고소라는 행위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김현구 입장에서 충분히 분개할 만한 일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5월 11일에 대법원은 이덕일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고등법원에서의 원심을 확정하였다. 물론 이것이 이덕일의 주장이 타당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아무리 엉터리인 주장이라 할지라도 사법적 단죄의 대상으로 삼기는 곤란하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덕일을 비롯한 그 추종자들은 사법부에 의해 자기들 주장의 진실성이 증명되었다는 식으로 재판 내용을 악용하려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사건 3. 동북아역사지도 제작 사업의 중단

    2016년 6월 28일 동북아역사재단은 연세대․서강대 산학협력단이 제출한 715장의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폐기를 결정하였다. 8년간 45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60여 명의 역사학자가 참여한 거대한 사업이 좌초된 것이다. 불합격 판정의 근거는 지도학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아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과연 이것이 진짜 이유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오래 전부터 이 사업의 무산을 요구하는 국민운동본부의 압력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지도가 시비의 대상이 된 것은 2015년부터였다. 이유는 고대 한국 프로젝트와 동일하였다. 동북아역사지도에 낙랑군이 평양에 그려졌다는 것이었다. 국민운동본부의 공격수 역할을 맡았던 것은 유명한 대중 역사 저술가인 이덕일이었다. 정치권도 국민운동본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동북아역사재단을 압박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2015년 4월 17일에 있었던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이하 동북아역사특위)의 회의 모습이다.

    동북아역사특위는 동북아역사지도의 연구 책임자인 임기환(서울교대 역사교육)과 이덕일을 함께 출석케 하여 문답을 진행하였다. 특위에서 이덕일이 주장하였던 바는 1970년대 이래 사이비 역사학계에서 해오던 이야기들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이덕일의 편에 서서 임기환에게 공격적인 질의를 이어나갔다. 그 내용을 보면 이미 이덕일에게 완전히 경도되어 있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신문과 방송 등 각종 언론 역시 동북아역사지도가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 보도하였다. 동북아역사지도 제작팀의 논리적인 반박과 해명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정치인들은 동북아역사재단이 저지르고 있는 커다란 잘못을 자신들이 개입하여 교정하였다고 하여야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언론 역시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하며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는 식의 자극적인 기사를 내는 편이 독자와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두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국민운동본부의 돌격대장 역할을 하였던 이덕일은 이덕일대로 매스컴의 관심을 즐기고, 동북아역사지도를 소재로 한 대중서(《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2015)를 출간하며 부가적인 수입을 얻었다. 사이비 역사학자가 악의적으로 왜곡한 주장과 정치·언론 집단의 무지와 공명심, 무책임이 뒤엉킨 가운데 역사학계가 8년간 공을 들여 만든 역사지도는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말았다.

    동북아역사지도 문제는 2017년 5월 30일 국회의원 도종환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과 함께 다시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가 동북아역사특위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해 보여 주었던 언행들에 대하여 역사학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고대사학회는 2017년 6월 13일 도종환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성명을 발표하였다. 한국고대사학회는 사이비 역사학 문제가 단순히 도종환 지명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회의원들 상당수가 여야 구분 없이 연루되어 있는 일임을 지적하였다. 더불어 박근혜 정부 하에서 사이비 역사와 연루된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벌인 파행에 대해서도 명시하였다.

    결과적으로 도종환 지명자는 이러한 논란과 무관하게 장관직에 임명되었다. 이러한 전개는 어차피 역사학계에서도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그런데 TV로 중계되었던 장관 후보 인사 청문회장에서 주목받은 이는 따로 있었다. 말을 아끼며 모호한 태도를 보인 도종환 지명자가 아니라 오히려 질의를 하기 위해 자리에 참석한 바른정당의 김세연 의원이었다. 그는 동북아역사특위에서 간사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다. 김세연 의원은 전날 발표된 한국고대사학회의 성명문을 의식한 듯 동북아역사특위의 활동을 옹호하며, 오히려 ‘주류 역사학계의 카르텔’을 운운하는 공격적 언설을 펼쳤다. 그야말로 사이비 역사가들의 주장과 논법을 복사해 옮겨 놓은 듯한 발언이었다. 결국 그의 발언을 통하여 한국고대사학회의 성명서 내용이 사실임이 증명된 셈이었다.

    도종환 장관 청문회에서 나타난 일련의 모습은 앞으로도 이 문제가 간단히 해소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사이비 역사학의 활동과 관련하여 차후 주목해야 할 단체는 2016년 6월 26일 발족한 미래로가는 바른역사협의회(이하 미사협)이다. 미사협은 이덕일이 소장으로 있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를 비롯하여 한배달과 대한사랑 등 사이비역사 단체들이 총망라된 대형 연합체이다. 미사협의 발대식은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진행되었으며, 3부 요인의 한 사람인 정세균 국회의장의 축사도 있었다. 미사협은 사이비 역사학계가 총결집한 단체인 만큼 앞으로도 사이비 역사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선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짐작된다.

    사이비 역사학은 귀납적 방법론을 통하여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이 결코 아니다. 망상적 사고와 주관적 당위, 그리고 프로파간다가 뒤섞여 있는 퇴행적인 역사 파시즘 운동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제 단순히 대중을 선동하는 단계를 넘어서 정치 권력과 밀접하게 결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한다. 그 폐해 또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앞서 살펴본 고대한국 프로젝트와 동북아역사지도 폐기 건은 사이비 역사가들의 영향력이 정상적인 학문 활동마저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한 단계에 와 있음을 보여 준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점은 언론들의 모습이다. 최근 언론 보도 내용을 보면 과거와 달리 주요 언론사들이 사이비 역사학에 대해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역사학계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 시작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사이비 역사학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단기간에 상황이 호전되기를 바라기 어려운 만큼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대응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역사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이비 역사학은 그 기반이 파시즘과 반지성주의인 만큼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 해악을 시민 사회에 널리 알려 경각심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