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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회고 2

    관리자 2017-03-14 19:06 2254

    하버드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회고 2

     

     

     

    마크 바잉턴 교수(Dr. Mark E. Byington)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II. 한국고대사 연구의 문제해결책과 그 시행

     

    서구 학계에서 한국고대사 연구 분야의 발전 전망이 암울하기 했지만 나는 그것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I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이유로 전통적인 수단-교수직 확보-으로는 이와 같이 새로운 분야를 발전시킬 수 없었다. 20054월 하버드에서 열린 고구려 회의가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 해 말 필자의 경력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비즈니스 컨설팅, 은행 또는 공무원으로 경력 궤도를 수정할지 고민하던 차에 운 좋게도 하버드 동문으로서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서 강의를 청강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청강한 강의에 영감을 받은 필자는 사업 접근법을 동원하면 한국고대사 분야를 발전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접근법은 문제를 분석하고(왜 한국고대사가 서구 학계에서 발전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발전되기 어려워 보이는 데 대한 이유), 필요성을 평가하며(한국고대사 연구 분야가 학계에 잘 소개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사업 계획을 세우는 활동들을 포함했다. 그 가능성에 고무된 나는 단 하루 만에 자세한 사업 계획과 제안서로 구성된 완전한 계획서를 순식간에 작성했고, 이 계획서의 내용이 결국 한국고대사연구실(Early Korea Project)로 발전했다.

     

    서구 학계가 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한국고대사 연구를 환영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 문제는 우선 순위가 높은 과목들이 아닌 한국의 고대사와 선사 시대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분야의 발전을 방해하는 제도적 경직성이 학계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한국고대사의 발전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서구 학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사업 계획을 세웠다. 이 사업 계획에 따르면, 한국고대사연구실(당시에는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은 주로 학문적 행사, 출판 및 다른 형태의 지원 활동을 통해 체계적이고 유도적인 방식으로 한국고대사라는 새 분야를 발전시킬 중앙 집권화된 조직이 될 것이었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론적 근거는 왜 서구 학계에서 한국고대사 분야가 필요한가에 대한 몇 가지 관찰 내용을 토대로 했다. 필자는 본인의 제안서에서 6가지 이유가 제시했다.

     

    1)   한국고대사는 현 사건들, 최근의 예를 들자면, 국제 관계에서 고대 고구려와 연관된 사례와 관련이 있다.

    2)   미국 학계에서 중국과 일본의 고대사와 고고학에 관한 학문이 발전되었는데, 이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국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해야 학문적 논쟁이 발생할 시 한국측 주장을 바로 파악하고 대변할 수 있다.

    3)   초기 중국이나 일본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연구에 한국을 포함시켜야 하는 필요에 직면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한국어로 된 문헌에 접근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 그 결과 한국의 이웃 국가들에게 주로 초점을 맞추는 영어 간행물에는 구식이거나 잘못된 한국 역사관이 종종 등장한다. 일부 학자들은 일본어나 중국어로 된 교과서에 실린 한국관 및 한국 역사관에 의존하는데, 이러한 사례가 많다.

    4)   한국 사례는 높은 빈도로 다양한 학문 분야 및 하위 분야에 긍정적이고 유용한 기여를 약속한다. 그 예로 미국에서 활발한 학문 분야인 국가 형성과 사회 진화 연구를 들 수 있는데, 한국의 사례는 이와 같은 연구에 관련 증거가 많은 예들을 제공할 것이다.

    5)   미국에서 한국고대사에 관한 발전된 학문의 부재는 동아시아학 전체로 볼 때 눈에 띄는 틈을 만든다.

    6)   한국고대사와 고고학은 동아시아에서 활발한 학문 분야이며, 그 자체로 서구 학자들의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와 같은 관찰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는 서구 학자들의 쉽게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국고대사와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토대를 마련할 프로그램 계획을 세웠다. 이들 프로그램은 한국 및 다른 국가의 학자 및 기관들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필요나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프로그램의 결과들을 제공함으로써 조금씩 그 토대를 구축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와 같은 인물들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공격적인 시장 분석 프로그램을 포함시켰으며, 이 프로그램에는 적극적인 홍보 프로그램이 들어갔다. 그 목적은 본질적으로 중국고대사나 일본고대사 분야와 맞먹거나 이들을 능가하는 방식으로 서구 학계에 한국고대사 연구를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국고대사연구실을 독자적인 기관으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2006년 초 하버드 대학의 한국학 연구소로부터 이 신생 프로젝트의 모체가 되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 결과 한국고대사연구실을 설립하는 일이 훨씬 더 쉬워졌는데, 내가 직접 다양한 서비스들을 만드는 대신에 하버드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들(특히 재정 관리)에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버드와의 연계성 덕분에 자금 조달 작업도 쉬워졌고, 그 결과 한국고대사연구실(그리고 한국고대사 분야)이 발전하고 번성할 수 있는 즉각적이고 생기 넘치는 학문적 환경이 제공되었다. 하버드와의 연계성에 내포된 하나의 단점이라면 모든 자금 조달 활동을 하버드(그리고 하버드의 한국학 연구소)가 승인하는 경로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그것이 문제되지 않았다. 필자는 한국에 있는 다양한 공공 재단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한국고대사연구실을 설립할 준비를 했다. 그 무렵 한국고대사연구실(Early Korea Project)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20064월에 하버드 대학의 한국학 연구소 옆에 사무실을 마련하였고, 5월과 6월에는 한국고대사연구실과 관련하여 수많은 사람들과 협의하였으며, 자금 및 기타 지원을 요청하고자 한국을 방문했다.

     

    자금 지원 신청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면서 한국고대사연구실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주로 한국고대사나 고고학에 관련된 주제를 활발하게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미 내 모든 학자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본인을 제외하고는 세 명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웨슬리안 대학의 조나단 베스트(Prof. Jonathan Best) 교수는 유명한 백제사 전문가이고, 그의 크게 환영받은 백제사 단행본이 2006년에 하버드 대학의 아시아 센터 출판부에서 간행되었다. 하와이에 위치한 브리검 영 대학의 리챠드 맥브라이드(Prof. Richard McBride) 교수는 신라사와 한국 불교의 전문가이다. 마지막으로 그 당시에 토론토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마틴 베일(Dr. Martin Bale)은 한국 선사시대 중 무문토기 시대의 전문가이다. 우리 네 명은 한국고대사연구실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고, 한국고대사연구실의 발전을 위한 최선책을 결정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만났다. 더불어 한국고대사의 일부분에 연구 관심이 있는 학자들로 자문위원회도 구성했다.

     

    핵심 요소들을 마련한 시점에서 한국고대사연구실의 활동 개시를 막는 유일한 요인은 자금이었다. 200611월에 한국고대사연구실(EKP)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관대한 보조금을 받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시했는데, 그 중에는 한국 고고학 강의 시리즈도 있었다. 이 강의는 하버드 대학의 동아시아 고고학 세미나와 함께 하버드에서 진행되었다. 20072월 초에 한국고대사연구실은 한국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또 하나의 관대한 보조금을 지원받기 시작했는데, 이 보조금은 주로 운영비에 사용되었다. 프로그램 계획과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 한국고대사연구실은 2007년 초에 기본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A Retrospective Account of the Early Korea Project at Harvard

     

    Mark E. Byington

    Harvard University

     

     

    Part II. The Problem of Early Korea Studies – A Solution and Its Implementation

     

    Although the prospects for developing the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in western academia looked bleak, I still had hopes that ways could be found to make that field a reality. Developing such a new field through traditional means—securing a faculty position—would not work for reasons already described. By late 2005, despite the success of the Koguryŏ conference held at Harvard in April of that year, I had decided that my career plans would have to change. While considering shifting my career trajectory toward business consulting, banking, or the US public service, I was fortunate enough, as a Harvard alumnus, to be able to audit courses at the Harvard Business School. Inspired by these courses, I realized that it might be possible to develop the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through a business approach. This approach involved analyzing a problem (why Early Korea Studies has not and will not develop normally in western academia), assessing the need (to provide academic coverage in that field), and working out a business plan with an array of programs designed to attain a specific set of goals. Inspired by this possibility, in a single day I quickly drafted a complete prospectus, consisting of a detailed business plan and proposal, the substance of which eventually became the Early Korea Project.

     

    There was no reason that western academia would not welcome Early Korea Studies as a field of study—the problem rested in institutional rigidity within academia that hindered the development of a new field that focused both on Korea and on the early historic and prehistoric periods, neither of which were viewed as high priority subjects. Nevertheless, it was clear to me that western scholars would benefit from the development of the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in numerous ways, and this realization guided my business plan. According to that plan, the Early Korea Project (though as yet unnamed) would provide a centralized organization that functioned to develop the new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in a methodical and guided manner, primarily through academic events, publications, and other forms of outreach. The rationale for engaging in such a project was based on several observations on exactly why the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was needed in western academia. In my proposal I outlined six reasons.

     

    1)      The history of early Korea is a pertinent feature in current events, a recent example being the case involving ancient Koguryŏ in international relations.

     

    2)      Studies on the early history and archaeology of China and Japan have been developed in US academia. It is therefore necessary to include Korea, so that balance may be attained, and so that, in the case of academic dispute, the Korean argument can be readily known and represented.

     

    3)      Scholars who specialize in early China or Japan often need to include Korea in their studies, but most lack the languages skills required to access scholarship in Korean. This has often resulted in outdated or erroneous views of Korean history appearing in English language publications that focus primarily on Korea’s neighboring countries. Some scholars resort to views of Korea and Korean history published in Japanese or Chinese textbooks. There are many examples of this.

     

    4)      The Korean case very often promises to make a positive and useful contribution to various fields and subfields of study, an example being the study of state formation and social evolution, an active field of study in the US, to which the Korean case would provide well-documented examples.

     

    5)      The absence of developed studies on Early Korea in the US leaves a noticeable gap in East Asian Studies as a whole.

     

    6)      Early Korean history and archaeology are active fields of study in East Asia and are themselves areas worthy of the attention of western scholars.

     

    Guided by these observations, I developed a program plan that would develop a foundation for studies of early Korean history and archaeology in ways best suited for ready reception by western scholars. These programs would focus on building that foundation piece by piece through working relations with scholars and institutions in Korea and elsewhere, and by providing the results of those programs to anyone with a need or interest. To accommodate the identification of such individuals, a fairly aggressive market analysis program was included, which involved an active outreach program. The goal was essentially to put Early Korea Studies on the map in western academia in ways that matched or exceeded the equivalent fields of Early China or Early Japan.

     

    Initially I had intended for the Early Korea Project to be an independent organization. However, by early 2006, the Korea Institute at Harvard University offered to provide a home for the fledgling project. This made development much easier, since I could rely on various services (especially financial management) that Harvard provided instead of building them myself. The association with Harvard also made fundraising easier to manage, and it provided an immediate and vibrant academic environment in which the Early Korea Project (and the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could develop and thrive. One drawback with the Harvard association is that all fundraising would have to be conducted through Harvard’s (and the Korea Institute’s) approved channels, but this did not prove to be a problem at this phase. I presented my prospectus to various public foundations in Korea and made preparations to launch the project, which by this time had been named the Early Korea Project. In April of 2006 I secured office space at Harvard next to the Korea Institute, and I spent May and June consulting with numerous people about the new organization and made a trip to Korea to solicit funding and other support.

     

    While waiting for responses to funding applications, I began to put the components of the Early Korea Project into place. A key move was the formation of a steering committee, formed of all of the scholars in North America whom I knew to be actively researching subjects focused primarily on early Korean history or archaeology. There were only three others besides myself. Professor Jonathan Best of Wesleyan University is a well-known specialist of Paekche history, and his much-welcomed volume on Paekche history had just been published by the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Press in 2006. Professor Richard McBride, now at Brigham Young University in Hawaii, specializes in Silla history and Korean Buddhism. And Martin Bale, then finishing a doctoral program at the University of Toronto, specializes in the Mumun Pottery period of Korean prehistory. The four of us constituted the Early Korea Project Steering Committee and met periodically to determine the best course for the development of the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There was also an Advisory Committee made up of scholars whose research interest included some coverage of early Korea.

     

    With the core components now in place, the only thing preventing the initiation of Early Korea Project activities was the matter of funding. In November of 2006 the EKP received a generous grant from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with which EKP activities commenced with a number of programs, including a series of lectures on Korean archaeology, which were held at Harvard in conjunction with the Harvard East Asian Archaeology Seminar series. Then, beginning in February 2007, the EKP received another generous grant, this time from the Korea Foundation, which was primarily to cover operational expenses. Now with both a program plan and the necessary funding in place, basic programs of the Early Korea Project commenced early in 2007.

     

     

    Part II Images

    1.    한국고대사연구실 사무실 명판(EKP Office Sign)

    2.    한국고대사연구실 사무실(EKP Office)

    3.    한국고대사연구실 운영위원회 위원들: 왼쪽부터 리챠드 맥브라이드 교수, 조나단 베스트 교수, 마크 바잉턴 박사, 마틴 베일 박사

    [EKP Steering Committee (left to right): Prof. Richard McBride,

    Prof. Jonathan Best, Dr. Mark Byington, Dr. Martin B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