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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 역사와 신화, 그리고 민족(2부)

    관리자 2016-10-14 13:45 2125

    단군: 역사와 신화, 그리고 민족(2부)

     

    이승호(동국대 강사)



    단군, 신화와 역사의 이중주

     

    그렇다면 신화란 무엇일까. 또 단군신화를 신화로 규정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종교학이나 신화학에 문외한인 만큼 여기에 대해서는 해당 분야의 지식을 빌려올 수밖에 없다. 먼저 이제는 종교학신화학 분야에서 고전이 된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는 자신의 저서 『신화와 현실(Myth and Reality)』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신화는 신성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은 원초의 때에 시원(始原)의 신화적인 때에 생겼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신화는 항상 <창조>를 설명하며, 어떤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존재의 시초를 말하고 있다.

    신화의 주역은 초자연적 존재이며, 그들은 원래 <태초>의 절대적인 때에 행했던 행위에 의해 알려지고 있다.

    신화는 항상 실재(reality)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신성한 이야기, <진정한 역사>라고 간주된다.

    신화는 초자연적 존재의 행위와 그들의 신성한 힘의 현현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중요한 인간활동의 모범이 된다.

    신화의 첫째 기능은 인간의 모든 의례와 중요한 활동, 식사결혼노동교육예술지혜 등의 모범형을 계시하는 데 있다.

     

    이밖에도 세세한 논의가 더 있지만 대략 위와 같이 정리해두고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살펴보면, 먼저 천신의 서자였던 환웅이 인간 세상으로 강림하여 신시를 건설하고 세상을 다스렸다는 이야기는 곧 고조선 이전 태초의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단군왕검은 천신의 아들과 곰에서 인간으로 변한 여성 사이에 태어났으며 천오백년 간 나라를 다스리고 천구백팔 세에 산신이 되었다는 내용은 단군이 초자연적초월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즉 이러한 이야기의 맥락에 주목할 때, 문헌에 보이는 단군에 대한 기록은 고조선인의 창세신화이자 건국신화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은 단군신화 속에 보이는 도교적불교적 요소, 즉 후대적 표현을 지적하며 단군신화가 고려시기 조작된 것이라 주장하였다. 물론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에는 후세인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용어가 산재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신화란 여러 시대에 걸친 전승 과정에서 가공되고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그 내용이 풍성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전승을 공유하고 다음 시대로 전달했던 전승의 전달자 및 수용자들의 인식이나 세계관 또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바뀌어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신화의 기본적 내용마저 창작하거나 뒤바꾸기는 어렵다. ‘하늘신의 후손과 곰 여인이 맺어져 단군이 탄생하였고, 그가 바로 고조선의 건국시조라는 신화의 기본 골격이 그 자체로 고조선인들의 창세신화이자 시조신화에서 연유하였다고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처럼 고조선의 건국신화이자 시조신화였던 단군신화는 그 처음 모습부터 역사가 아닌 신화로서 시작하였다. 실상 이와 같은 건국신화는 고대 왕실을 비롯한 지배층의 주요 지배 이데올로기였으며, 그들의 집권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이념적 근간이었다. 따라서 단군신화 또한 고조선의 건국을 노래하는 신화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시 최고지배층에게 집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던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볼 경우 고조선 건국신화로서의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멸망과 함께 그 역할과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후로도 단군신화는 오랜 시간 후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 생명력을 연장해갔다. 단군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고려인들에게 역사 공동체라는 동질의식의 밑바탕이 되어 주었고, 근대에 들어서는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가 발견되면서 그 정체성을 담보해줄 수 있는 혈연적 시조로서 추앙되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에 대한 열망 속에 시조 단군은 근대 한국의 저항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자리하였으며, 대종교를 중심으로 신앙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즉 한국 역사에서 사회적으로 그 필요성이 요구될 때마다 단군은 마스터키처럼 다양한 형태로 소환되었고, 그 나름의 역사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결국 단군신화의 역사성은 단군 자체에 있다기보다 단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군신화의 전승 과정과 단군에 대한 시대별 인식의 흐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단군에 대한 추앙과 변곡(變曲)의 역사는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북한의 단군릉 축조 및 그와 관련된 일련의 주장들일 것이다.

     

     

    신화는 만들기는 계속되고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학계에서 바라보는 단군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신화적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3년 평양에서 이른바 단군릉을 발굴하면서 그와 같은 시각은 송두리째 뒤바뀌게 된다. 북한학계는 현재 그곳에서 나온 유골의 연대 측정을 바탕으로 무덤의 주인공이 반만년 전에 생존했던 실재한 인물이며, 바로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무덤을 대신하여 거대한 단군릉(높이 22m, 너비 50m)을 새롭게 조영하였다. 단군이 다시 한 번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하는 순간이다.

     

    개건 이전()과 이후() 단군릉의 모습

    현재 북한은 단군을 기념하는 것은 부르주아적 유산이라 하여 배척해왔던 그전까지의 시각을 폐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단군릉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고조선의 건국 연대도 기원전 30세기 초까지 끌어올려 보고 있다. 그리고 1998년부터는 평양 일대의 대동강 유역이 세계 4대문명과 맞먹는 수준의 고대문명을 일구어 이른바 대동강문화가 존재했던 곳이라 주장(대동강문화론)하고 있다. 이처럼 신화 만들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북한 학계의 주장은 1990년대의 체제적 위기를 단군을 구심점으로 삼아 돌파하고자 했던 북한 정권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연속되는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그들은 국가구성원을 일치단결 시킬 수 있는 마스터키로서 또다시 단군을 소환했다. 물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단군을 통한 민족 공동체 확립의 필요성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으며, 특히 반세기 이상을 끌어 온 분단 상황 속에서 이른바 단군민족주의는 향후 민족 통일의 동력원으로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는 역사 속에서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인식되고 소환되어 왔던 단군의 역사성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단군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반문해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를 위해선 우선 단군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 평양에서는 또다시 기원전 3000년경의 신화를 새롭게 만들어내었다. 지금도 신화는 만들어지고 있다. 끊임없이 창출되는 새로운 단군상에 대한 피로감도 쌓여만 가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단군에 대한 인식이 예전 같지 못한 사정에는 이러한 누적된 피로감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 누군가의 어떤 필요성에 의해 다시 꺼내어지게 될지라도 - 이제 단군을 다시 원래의 제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고조선의 건국신화 속 주인공 단군, 그 본연의 자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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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비평 2016년 겨울호(통권 제 1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