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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국사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 2

    관리자 2016-10-13 20:53 1822

    민족의 국사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 2

    장미애




        1986년 국사편찬심의회의 구성과 민족교육의 지속

    교과서 문제는 이 시기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사이비 역사학의 행정 소송, 국회 청원 등을 통해 불거진 국사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 후에도 지속되었다. 1986년 조선일보에서 광복 41주년 특별기획으로 이루어진 우리역사 점검8151면에서 다루어진 국사교과서 새로 써야 한다는 기획 기사는 국사교과서 문제를 다시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여기서는 일본의 역사왜곡이길 고대사교육 회복 시급”, “삼국 건국연대·시조 등 증발과 같은 표제 아래 사이비 역사학측의 주장을 답습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간 이후 교육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국사편찬심의회를 구성하고 이 기구를 통해 국사교과서 편찬준거안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와 함께 1987225~26일에 걸쳐 한국상고사의 제문제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하 정문연)에서 고조선의 영토 문제 등을 주제로 한 대규모 학술회의가 열리기도 하였다. 정문연에서 열렸던 학술회의는 대중에 공개된 학술회의였기 때문에 천여 명에 가까운 청중들이 모여들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으나 결국 사이비 역사학측의 영향을 받은 대중들의 기존 사학계에 대한 일방적 공세로 인해 제대로 된 학술회의로서의 성과를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정된 국사교과서 편찬준거안은 고대사부문 17개항, ·근세사 부문 7개항, ·현대사 부문 6개항, 일반·역사교육 부문 4개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고대사 부문의 경우 17개항 중 5개항이 고조선과 한군현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당시 교과서 개편 과정에서 고대사, 특히 고조선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백제의 요서지방 진출, 삼국 및 가야의 일본 진출과 이들의 문화 전파가 일본에 끼친 영향,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 문제, 삼국통일 과정에서 신라인의 당군 축출 강조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의 주체성과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서술을 강조하고자 했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편찬준거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5차 교육과정의 교과서가 1990년부터 발행되어 사용된다. 5차 교육과정 교과서의 두드러진 특징은 단군의 고조선 건국에 관한 서술의 강화와 사이비 역사학측의 견해가 더욱 많은 부분에서 수용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고조선과 관련해서는 단군과 고조선이라는 소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싣고 있다.

     

    고조선은 단군왕검(檀君王儉)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한다(B.C. 2333)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전하는 단군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시조 신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기록은 청동기 문화를 배경으로 한 고조선의 성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산림 지대에 거주하면서 농경을 하고 있었다. 이 때, 환웅 부족은 태백산의 신시를 중심으로 세력을 이루었고, 이들은 하늘의 자손임을 내세워 자기 부족의 우월성을 과시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신석기 시대 말기에서 청동기 시대로 발전하는 시기에 계급의 분화와 함께 지배자가 등장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 질서가 성립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弘益人間)"는 것도 새로운 질서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후 고조선은 왕검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면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B.C. 3세기 경에는 부왕(否王), 준왕(準王)과 같은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으며, .”

     

    이와 함께 고조선의 세력 범위라는 제명으로 지도를 싣고 있다(그림 1). 교과서의 내용에 따르면 단군 이야기가 민족의 시조 신화라고 언급은 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내용에 따르면 단군왕검에 의한 고조선의 건국이 신화가 아닌 사실과 같이 서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후 고조선의 발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강력한 왕의 등장과 왕위 세습의 언급은 마치 고조선이 강력한 고대 왕국을 이룬 것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그림] 5차 교육과정기 고등학교 국사()에 수록된 고조선의 세력범위지도

       이는
    [그림1]의 고조선 세력 범위를 나타내는 지도와 함께 제시됨으로써 광대한 영토를 가진 고대국가로서 고조선의 이미지를 부각 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문제는 제시된 그림은 비파형 동검의 분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는 당시 비파형 동검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분포, 즉 문화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에 비해 세력 범위는 지배영역 내지는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을 의미한다는 점에 있다.

    더욱이 그림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시기에 대한 표시가 없어 마치 고조선이 성립단계부터 광활한 영토를 지닌 강력한 제국이었던 것처럼 인식될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림 1]에서 고조선의 세력 범위와 동이족의 분포 범위를 겹쳐서 제시하고 있는 것 역시 고조선의 범위를 더욱 넓게 인식하게끔 만드는 착시 효과를 주고 있다. , 점으로 표시된 고조선의 세력 범위 위에 동이족의 분포 지역을 더욱 짙은 색으로 표시하면서 그림의 제목은 고조선의 세력범위라고 제시함으로써 마치 동이족의 분포 지역이 고조선의 세력 범위로 보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조선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 만들기는 고조선 이후에 건국된 국가들의 발전 단계 자체를 서술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서술에 따르면 단군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이후 강력한 고대 국가로 발전한 고조선을 설정하였기 때문에 이후 우리 역사 속에서 성립발전한 여러 고대 국가들의 국가 발전 과정과 이를 아우르는 역사 발전 과정이 서로 모순되는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 설정된 것이 여러 나라의 성장과 같은 모호하한 표현이었다. 이는 1987년 마련된 국사교과서 편찬기준안 중 고대사부문의 9번째 항에서 제시한 한국 고대의 국가 발달 단계는 1.군장국가, 2.연맹왕국, 3.중앙집권국가의 순서로 기술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에도 부합하지 않는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나라의 성장에 대한 교과서 본문의 설명에서는 고구려의 5부족 연맹, 삼한의 마한, 진한, 변한 연맹체와 같은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여러 나라라는 제목이 주는 어감은 이러한 발전 단계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이는 3차 교육과정의 교과서에서는 중단원의 제목이 ‘2. 부족 국가의 성장과 그 문화’, 소단원의 제목이 철기 문화와 부족 국가의 성장이라고 하여 그 발전 단계를 제목에서부터 인식할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었던 것과도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4차 교육과정기 부터 시작하여 5차 교육과정기에 와서는 완전히 뿌리내리고 있다.

    이렇듯 고조선 이후에 성립한 국가들에 대해 그 역사적 발전 단계를 명확히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서술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은 여러 나라로 표현되고 있는 국가들과 고조선과의 관계에 기인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여러 나라가 성립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고조선을 강대한 고대 국가로 설명함으로써 이후 성립된 나라들은 이러한 강대했던 고조선이 멸망한 후 이들이 분열하면서 성립성장했던 나라들로 이미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강력한 고대 국가인 고조선이 전제되면서 만들어낸 왜곡된 허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5차 교육과정기 고등학교 국사()에 수록된 백제의 발전(4세기 후반)’ 지도

    한편 백제의 요서 지방 진출에 대한 설명에서도 문제를 보이고 있다. 이미 2차 교육과정의 교과서에서 부터 백제의 요서 지방 점령과 산둥 지방을 매개로 하여 활발하게 해외 진출을 이루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백제의 요서 지방 점령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논란이 있는 학설로 이를 교과서에 사실로서 기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차 교육과정의 교과서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을 넘어 백제의 발전(4세기 후반)(그림2)이라는 표제로 백제의 요서지방 및 산둥반도 진출을 명확화하고 있다. [그림2]에 따르면 동진과의 교류와는 달리 요서지방, 산둥반도로 향한 화살표가 고구려 공격, 마한 병합 등과 같이 굵은 선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백제의 여서지방 진출과 같은 서술은 결국 사이비 역사학측이 만들고자 했던 우리나라 고대사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그들은 강력한 고대국가를 주장하게 되었고, 그 증거로서 내세운 것이 넓은 영토를 가진 강력한 국가였다. 고조선과 고구려의 넓은 영토와 대 중국 투쟁 과정이 그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였으며, 백제 역시 한반도 남부에 국한된 작은 나라가 아니라 중국 대륙과 왜까지 그 영향력을 뻗친 강력한 국가로 이미지화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림1][그림2]와 같은 그림을 제시함으로써 그 시각적 효과를 더욱 크게 만들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