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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와 중국사의 경계에 핀 한권의 꽃

    관리자 2016-09-29 14:28 2282

    한국사와 중국사의 경계에 핀 한권의 꽃

    : 심재훈, 2016,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푸른역사

     

    이준성(국사편찬위원회)

     

    목차

    1. ‘근대 역사학의 균열과 새로운 흐름

    2. 책의 구성과 문제의식

    3. ‘和而不同을 위한 두가지 길

     

    1. ‘근대 역사학의 균열과 새로운 흐름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저서 액체 근대에서 20세기 근대와 21세기 근대를 구분하고 이를 고체 근대액체 근대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안정적이고 견고한 고체의 성질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액체의 성질을 감각적으로 대비시킨 후, 우리가 사는 사회가 무겁고 예측통제가 가능한 고체적인 근대에서 가볍고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액체적인 근대로 점차 이동되어 왔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고체에서 액체로의 융해는 근대 역사학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역사학이 근대 이후 독립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민족 혹은 국가의 자기정체성 확보 요구와 결합하여 견고하고 안정적인 특성들을 만들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견고하던 역사학이 그 응집력을 점차 잃어 가고 있는 조짐을 여러 방향에서 감지해볼 수 있다. 민족주의 역사학 혹은 일국사로서의 한국사 연구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대중들이 역사소설이나 역사 영화, 사극 등을 통해 역사지식을 습득하고, 여러 대학 사학과에서 원전 강독 수업 대신 역사와 문화콘텐츠’, ‘역사와 대중매체관련 수업이 개설되고 있는 추세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 역시 또 다른 방향에서 역사학이 서서히 혹은 급격하게 융해되어 가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게 한다. 다만 불분명하고 불안정적인 액체의 특성을 떠올려볼 때 그 변화의 방향이나 특성을 규정하거나 종잡기 어려울 뿐이다.

    평자는 견고한 고체 역사학의 분자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조금씩 잃어가던 20세기에 대학에 입학하여 현재까지 한국고대사를 전공하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평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학부 전공 서적 중 하나는 2000년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발간한 20세기 역사학, 21세기 역사학이다. 역사학계에 부과된 과제를 점검하고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역사학을 전망하는 이 책의 내용이 대학원에 입학하여 역사 공부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결심한 평자에게는 마치 늦여름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뉴스 앵커의 멘트처럼 초조와 불안과 두근거림으로 기억된다. IMF 체제의 깊은 터널을 지나던 당시의 암울함과, 많은 것이 달라지고 새롭게 시작될 것 같은 묘한 기대감이 서로 교차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당시 대표집필을 맡았던 김인걸 교수는 책의 총론 격인 현대 한국사학의 과제라는 글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새로운 역사학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후, 사회구성체론에 기반한 과학적 역사학은 아직 생명력을 잃지 않았으며 그것이야말로 역사인식의 파편화를 막고 사회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해줄 것임을 주장하였다. ‘고체 역사학의 견고함이 여전함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해야 함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다만,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이 추구하고 제기한 문제에 대해 경계하면서도 그것이 위기의 본질이 아니라고 보았다. 위기는 차라리 한국사학이 현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유리되어온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위와 유사한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나, 21세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역사학이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소위 사이비 역사학이 대중들에게 수용되어 그 파급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학문의 선을 넘은 '상고사'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늦었지만 최근 역사학계가 '침묵의 레토릭'을 깨고 여러 대응을 해나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여러 방면의 대응 중 얼마 전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라는 책으로 발간한 심재훈 교수의 시도는 매우 주목된다.

    심재훈 교수는 지난 2015년 중반 본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나의 중국 고대사 연구 편력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여, 60회가 넘는 글을 발표해왔다.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는 이렇게 대중과 소통하고 실시간으로 독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모아진 글을 엮은 것이다. 이하에서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의의를 생각해본다.1)

     

     

    2. 책의 구성과 문제의식

     

    저자 심재훈 교수는 1985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시카고대학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에서 중국 西周史 전공(학위논문 제목 : 진국의 초기 발전)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50대 중반의 중국 고대사 연구자이다. 저자는 1989년 첫 논문을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다수의 영어논문을 포함하여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중국 청동기의 신비, 중국 고대국가의 형성등의 저서를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4년 이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해외 동아시아학 연구성과 DB 구축사업을 진행하였는데, 이 사업은 논문 영어, 불어, 독어권의 동아시아학 주요 단행본(2029)과 논문(5316) 목록 뿐 아니라 간단한 국문 해제를 붙여 유관 학문을 하는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2)

    그의 논문 및 활동 이력은 그가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인 연구자임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 엄격한 사료 비판 중심의 연구를 강조하는 역사학자일수록 대중들을 위한 글을 쓰고 책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SNS를 통해 본인의 생각을 개진하며 대중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놀랄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들어가며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중국 고대사라는 넓고 깊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변방에서나마 아카데미즘을 고수해왔다. 지금까지 감히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학술지들에 5편의 논문을, 한글로도 심혈을 기울인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걸 몇 명이나 읽어주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 거기에는 불가피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대 중국이라는 무궁무진한 흥미로운 세계에 가까이 가 있으면서도, 그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에는 게을렀던 나를 비롯한 그 분야 종사자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6)

     

    학문의 세계에만 갇혀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가 스스로 밝힌 변화의 이유는 무궁무진한 흥미로운 세계인 고대 중국을 공부하면서 그 성과의 공유 범위가 너무나도 좁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저자에게 그러한 안타까움을 더했던 것은 역사 관련 베스트셀러들의 허울이었다. 저자는 국내의 역사 혹은 고대사 관련 베스트셀러들이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데서만 그치면 문제될 게 없다. 그렇지만 그걸 읽는 독자들은 그걸 진짜 역사로 믿으며 조금 지나치게 얘기하면 헛된 망상에까지 사로잡히게 되니 문제가 된다(272)’고 진단한다. 이러한 인식 하에 한 가지에만 몰두해도 조그만 것도 이루기 어려운 판에, 학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추구하는(6)’ 시도를 스스로 감행한 것이다. 그 첫 번째 결실이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들어가며

     

    1부 중국 고대를 넘어 동아시아학으로

    1_고대 중국에 빠지다

    2_동아시아학의 과거와 현재

    3_동아시아의 민족주의적 고대사 서술

     

    2부 역사학자 탄생기

    1_인고의 시간 1

    2_인고의 시간 2

    3_인고의 시간 3

    4_미국에서의 초짜 역사학자

    5_한국에서 비주류 역사학자로 산다는 것

     

    3부 중국 고대 문명의 세계

    1_알려지지 않은 중국 역사: 晉侯蘇編鐘晉國史

    2_나의 연구 영역

     

    4부 중국 전문가의 한국사 관전평

    1_기자조선 문제

    2_구미의 한국상고사 연구

    3_한국사의 쟁점들과 역사교육

    4_한민족의 형성과 동아시아

    5_일본 고분의 이해

     

    나오며

     

    이 책은 애당초 페이스북에 연재하던 글을 묶은 형식이기 때문에 구성이 자유롭다. 중국 고대사와 한국 '상고사'에 관한 내용, 자신의 공부 경험에 대한 회상 등에 대한 짧은 글들이 자유롭게 뒤섞여 있다.

    다만 책의 편집 과정에서 총 4부로 나누어 대강의 구분을 두었는데, 먼저 1부와 2부에서는 주로 연구자로서의 개인사와 더불어 저자가 어떻게 역사 공부를 시작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연구자로서의 삶을 이어오고 있는지를 진솔한 문체에 담아 소개하고 있다. 이야기는 스스로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지칭하고 있는 擬古主義로 시작한다. 구제강 선생은 고대사의 경우 서술 시점이 후대로 내려갈수록 더 오래되고 위대한 것들로 증폭 서술되어 누층적으로 조성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구제강의 의고 학풍은 이 책의 마지막까지 묵직하게 깔린다.

    이후 저자가 역사학에 입문하여 다양한 방식의 훈련과 체험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구미 동아시아학의 흐름을 정리하며 필자가 미국에서 중국 고대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를 밝히고, 인고의 시간을 통해 박사학위을 취득하는 과정, 그 이후 미국 대학을 거쳐 한국 대학에 안착하는 과정이 담담하게 담겨진다.

    이어서 3부와 4부에서는 저자가 그동안 어떤 주제의 연구를 했는지를 소개하고, 그와 연관하여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몇몇 역사학 관련 이슈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저자는 20세기 후반 이래 중국 고고학은 유례없는 성과를 축적하고 있어서, 이제 새로운 출토자료에 대한 이해 없이 고대 중국을 제대로 연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음을 강하게 주장한다. 또한 주로 갑골문과 금문, 죽간 등 출토문헌을 통해 商周史를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해온 저자의 학문 여정을 소개하고, 총 열 명 남짓한 연구자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한국에서의 중국 선진사 연구 현황을 검토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 '상고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담겨있다. 저자는 20세기 후반 한국인들의 뇌리를 지배한 민족주의가 21세기 들어서까지 역사학 연구에 암운을 남기고 있다고 보고 20세기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보편성과 그로 인한 고대사 논쟁의 소모성을 언급한다. 나아가 구미의 한국 '상고사' 이해 및 이를 토대로 한 저자 자신의 인식 변화를 상세히 서술한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거대한 한국 고대사 상에 익숙한 독자들이 이러한 비판적 성찰을 이성적으로 수용하기를 요청한다.

     

     

    3. ‘和而不同을 위한 두가지 길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있는 바는 결국 화이부동이라는 말로 집약해볼 수 있다. 사실 저자는 몇 년 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에 초빙된 해외 석학들의 강연을 엮어화이부동의 동아시아학 : 민족사와 고대 중국 연구 자료 성찰󰡕을 출간한 적이 있다. 1990년대 이래 한국 학계에서 동아시아학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자신들의 연구를 동아시아학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는 연구자가 많아졌지만, 그 중 국제적으로 그 학문의 수준이나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해외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와 를 이루지 못하고서는 한국적인 부동도 추구할 수 없다3)고 주장하였다.

    위와 같은 저자의 견해는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앞 장에서 살핀 책의 내용을 더듬어보자면, 책의 1부와 2부에서 저자가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한 다양한 방식의 훈련과 체험은 스스로 화이부동의 정신을 실천해나가고자 하는 노력으로 설명되며, 3부와 4부에서 그동안 어떤 주제의 연구를 했는지를 소개하고, 그와 연관하여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몇몇 역사학 관련 이슈들에 대해 논의한 것은 화이부동하지 못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식으로 역사를 인식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의 구절들은 저자의 안타까움을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중국이나 일본과의 학술적 경쟁에 일희일비하며 그 경쟁에서의 승리 보증을 염원하면서도, ‘우리 것에만 집착하며, 정작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인 동아시아 문명의 원형에 대한 올바른 이해 추구에는 짐짓 무관심함은 안타까운 일이다.(53)

    그러면서 저자는 서구에서 그리스·로마 문명이 거부감 없이 공통의 유산으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중국문명을 동아시아 문명의 요람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198). 고대 한반도에 있던 국가들의 영토와 영항력을 강조하며 웅대한 고대사 상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중국 문명을 동아시아 문명의 요람으로 함께 공유하며 연구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다. 평자 역시 이러한 제안에 공감하는 바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인 것은 우리 옆에 있는 타자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분리된 동시에 연결되어 있으며, 구별되는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4)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표시하는 경계는 장벽인 동시에 다리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위와 같은 제안을 하면서 염두에 두는 것은 한국의 상고사, 그 중에서도 고조선사 연구이다. ‘역사 왜소 콤플렉스에 시달려온 우리 국민들에게 확대된 고조선사연구가 큰 위안이 되어버린 상황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하버드 대학에서 지난 2000년 출간된 배형일 교수의 한국기원의 구성 : 한국 국가 형성 이론에 있어서 고고학, 역사학, 민족 신화의 비판적 재검토』를 소개한다. 배형일 교수는 이 책에서 한민족의 기원을 만주에서 찾는 지난 세기 한국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배형일 교수의 연구가 근래 한국 고대사 연구의 성과를 얼마나 파악하고 정리했는지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의 고대사 연구자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이 연구에 관심을 갖고 검토했는지를 묻는 저자의 지적은 특히 평자와 같은 또래의 연구자들에게는 깊이 새겨볼 점이라 하겠다.5)

    다만, 민족을 배제하는 구미 학계의 논의를 통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연구의 중립성이 오히려 이 지역을 단순히 중국화해버리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249). 이러한 점에서 화이부동을 위해 해외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와 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방법론에 대한 약간의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평자는 를 이루는 것보다 부동의 정체성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부동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과정이 어쩌면 지난하고, 어쩌면 편협해보이고, 어쩌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국 대화는 상호 소통의 관계라 할 때 를 이루기 위해 해외 학계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과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일 수밖에 없다.

    이제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평자는 이 책을 통해 학문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구미학계의 학문 경향과 그 역사를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해볼 수 있었다. 지금껏 중국 고대 문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못했음을 반성하기도 했으며, 한국사 연구와 관련된 여러 논쟁에 대한 저자의 일침에 많은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특히 중국 문명을 동아시아 문명의 요람으로 함께 공유하자는 제안에 동의하면서도, ‘를 먼저 이루라는 저자의 화이부동방법론에는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평자의 태도가 바로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어느 비주류 역사가로 지칭하고 있지만, 평자가 보기에 저자는 지금까지 경계로 인식되어 왔던 곳들을 넘나들었던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한국학계와 구미학계의 경계를 경험했고, 중국 고대사와 한국 고대사의 경계를 경험했으며, 학계의 카르텔 안과 밖을 경험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국학계와 구미학계 사이에, 그리고 중국 고대사와 한국 고대사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 저자의 경험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6) 이 책은 그러한 경계 사이에 핀 한 권의 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견고해 보이는 것들이 점차 녹고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져 가는 현재의 흐름 속에서 저자가 서있던 경계들이 허물어지는 날 역시 멀지 않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

    <출처 httpcafe.naver.comiphonedslr118>


    1) 평자는 저자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팔로워를 신청하여 다음 글의 업데이트를 기다리곤 했다. 몇몇 글에 대해서는 역사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카톡방에 소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등 나름대로 지지와 성원을 보낸 바 있기에 이 책의 출간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 반가움에 서평을 맡기는 했지만, 사실 평자는 저자와 전공 영역이 다를 뿐 아니라, 평자가 아직 연구 입문 단계에 머물고 있는 반면, 저자는 꾸준하게 연구주제를 확장하면서도 정력적으로 연구성과를 제출하고 있기 때문에 평자의 입장에서 저자의 넓은 문제의식을 모두 이해하기에도 벅찬 상태이다. 다만 저자에게서 배우는 입장에서 저자의 노력이 학계와 대중에게 조금 더 알려지는 데에 미력이나마 보탤 수 있음을 더없는 기쁨으로 삼으며 서평을 작성하였음을 밝힌다.
    2) 그 성과는 2016년 완료되어 다음 사이트를 통해 제공된다.(
    http://weas.dankook.ac.kr/)
    3) 심재훈 엮음, 2011, 화이부동의 동아시아학: 민족사와 고대 중국 연구 자료 성찰, 푸른역사, 4~7

    4)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박세혁 역, 2012, 배제와 포용
    , IVP
    5) 저자는 이미 배형일의 연구와 관련하여 국내의 고대사 연구자들이 이 책을 식민사학자들 연구의 아류로 치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검토하길 기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심재훈, 2001, 20세기 한국 상고사 연구에 대한 반성, Hyung Il Pai, Constructing "Korean" Origins (Cambria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역사학보17
    )
    6) 함민복 시인의 시 의 첫 구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