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KAA

    [제10회 콜로키움 : 위서(僞書)의 사회사(1)] 후기

    관리자 2016-02-02 17:13 1986

    10회 콜로키움 : 위서(僞書)의 사회사(1)후기

     

    최혜민(경희대 석사졸업)

     

     

    일시: 2016127() 18:00~20:20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주최: 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주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웹진팀(젊은 역사학자 모임)

     

    사회: 전영욱(역사문제연구소 사무국장)

    기획논단: 강진원(서울대),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의 추이와 현황

    1발표: 박지현(서울대), 위서(僞書)를 말하다

    2발표: 장 신(성균관대), 정말 일제는 한국 고사서를 불태웠나?

    자유토론

     

     

    1. 전개

    2016127일에 진행된 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의 제10회 콜로키움은 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와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뿐 아니라 역사문제연구소가 공동주최로 나섰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장인 조인성 선생님도 공동주최단체가 늘어난 것에 대하여 우리의 목소리가 좀 너 널리 퍼질 수 있지 않을까한다는 기대감을 전하였다. 사회를 맡은 역사문제연구소의 전영욱 선생님은 고대사 연구자와 근현대사 연구자의 협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역사학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콜로키움의 의의를 짚어주었다.

     

    2. 진행

    인사말과 전개사가 마무리된 후, 강진원 선생님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의 추이와 현황 : 무엇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는가? 그 멈춤은 정당한가?, 박지현 선생님의 위서(僞書)를 말하다, 장신 선생님의 정말 일제는 한국 고사서(古史書)를 불태웠을까?발표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발표를 통해 역사학계와 정권’, ‘역사학계와 사이비역사학계’, ‘역사학계와 대중의 관계에 대한 여러 선생님들의 고민을 접할 수 있었다.

     

    1)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의 추이와 현황 : 무엇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는가? 그 멈춤은 정당한가?- 강진원 (서울대 국사학과 강사)

    강진원 선생님은 기획논단으로 동북아역사지도 문제의 경과를 설명해 주었다. 동북아역사지도는 동북아역사재단이 GIS 기법을 활용하여 동북아 전체를 하나의 역사단위로 파악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들고자 기획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2015320,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에서 이루어진 업무보고에서 국회의원들에 의해 동북아역사지도가 식민사학을 옹호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어 47일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 관련 논의에서 이덕일 소장이 동북아역사지도의 독도누락문제를 거론하고 104일 이상일 의원이 과거 동북아역사재단이 미국 CRS에 전달한 지도가 한국사를 왜곡했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확대되었다. 결국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하여 지도학적 완성도가 미비하다며 사업부실 판정을 내렸고, 편찬위원회의 재심사 요청은 거부한 상태이다.

    강진원 선생님은 이러한 동북아역사지도 사태에 대하여 국정교과서 문제와 같이 정권의 의도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로 웅비사관의 관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고대사 서술을 강조하는 기조는 국정교과서 근·현대사 파트의 친일-독재 미화프레임을 약화시키기 위해 채택된 방편이다. 특히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했던 국회의원들이 이전에 이덕일 소장의 강연회를 개최한 적이 있고, 사이비역사학계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동북아역사지도가 악용될 우려가 더욱 큰 상황이다. 이에 대하여 강진원 선생님은 해방 이후 한국 인문학의 척도가 될 만한 사업이 국회에 의해 좌초되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정치권으로부터 학문적 자유를 엄수해야함을 강조하며 발표를 마무리하였다.

     

    2) 위서(僞書)를 말하다- 박지현 (서울대)

    박지현 선생님은 저자·저술시기·간행사항 등 서지사항 분석을 통해 [단기고사]·[규원사화]·[환단고기]가 위서임을 밝혔다. 먼저 [단기고사]는 대야발이 천통 31년에 재판 서문을 작성하고 광무 11(1907)에 학부 편집국장 이경직이 중간 서문을 작성했다고 되어 있으나, 천통은 사서에 전하지 않는 연호이고 1907년은 이경직이 학부 편집국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이므로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규원사화]는 저자라고 알려진 북애노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고 단군기에 있는 오류가 [해동역사]지리고의 오류와 동일하여, 1823년 이후 [해동역사]를 참고해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환단고기]삼성기를 지었다고 되어 있는 안함로와 원동중이 안함·원로·동중 3인의 오기이고, 곳곳에 등장하는 영고탑(寧古塔)’은 청나라 때의 지명이므로 그 이후의 저작이다.

    [단기고사]·[규원사화]·[환단고기]는 과거에 사이비역사학계에서 주요근거로 사용했던 자료인 만큼 시중에도 다양한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다. 박지현 선생님은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 [부도지]를 번역한 학생, 연구서와 재야사서가 혼재되어 있는 서가 등을 예로 들며 국가 원수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위서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있는 상황을 경계하였다. 발표자 선생님들도 과거에 다양한 자료를 통해 웅대한 고대사관을 접하고 사학과에 입학했다고 이야기한 만큼, 실제로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위서를 쉽게 판별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정말 일제는 한국 고사서(古史書)를 불태웠을까?- 장신(역사문제연구소)

    마지막으로 장신 선생님은 위서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관련하여 조선총독부 ‘5120만권분서사건의 진위여부를 다루었다. ·현대에 위서가 만들어지면서 일제에 의한 고사서(古史書)의 소실이 그 명분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우리 민족고유 계통의 사서류와 애국서적 약 5120여만 권을 탈취·소각했다는 설은 교육계와 역사학계에 자연스럽게 수용되었지만, 그 근원은 1954년에 출판된 [제헌국회사]1965년에 출판된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때 [제헌국회사]는 별도로 제시한 근거가 없고,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는 [조선총독부관보] 일부를 근거로 제시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이들을 근거로 이상시가 다시 한 번 논의를 확장시켰으며, 경찰을 동원한 취조국이 민족사를 왜곡하고자 도가사서 및 단군관련 사서를 분서했다는 내용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장신 선생님이 당시 통계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조선총독부관보]에 기재된 51종의 서적은 대부분 1905년 이후 발행된 애국계몽 서적이었고, 일제가 압수한 서적의 수량은 최대 10만권을 넘지 않는 수준이었다. 또한 당시 취조국은 경무총감부를 동원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장신 선생님은 이렇듯 근거도 부족하고 허술한 주장이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된 것에 대하여 과거 빈약한 근대사연구 환경과 일제 경찰에 대한 과대평가 및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라고 하였다.

     

    4) 종합토론

    종합토론 시간에는 앞선 발표들에 대한 질의응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동북아역사지도의 독도문제에 대한 문의가 많이 제기되었다. 또한 역사학계 연구 성과의 학계 내 재검증문제, 대중적인 유통 및 소통 문제, 사이비역사학계의 문제제기에 대한 학계차원의 대응문제 등 현실적인 차원의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사이비역사학계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강진원 선생님은 정당한 지적과 부당한 지적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라면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장신 선생님은 권력·국민·언론 등에 의해 원칙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박준형 선생님은 [단기고사] 등의 위서논쟁은 이미 일단락되었고 현재 사이비역사학계와 역사학계의 논점은 사료해석 문제로 들어갔으므로 예전의 비판방식을 견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였다.

     

    3. 소감

    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의 콜로키움이 사이비역사학의 문제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제8회 콜로키움부터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웹진팀(젊은 역사학자 모임) 주관 하에 사이비역사학의 문제점을 밝히고 그 대응책을 모색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위서(僞書)의 사회사콜로키움 역시 문제의식을 같이 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콜로키움의 주제에 대한 별도의 코멘트는 없었지만, 사이비역사학계의 역사관 가운데 위서에서 비롯된 것이 많고 이들 위서가 대중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젊은 역사학자들이 마주한 고민거리의 일면과 역사학이 현실에서 가지는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