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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학술동향] 타지기스탄에서의 발굴로 5~8세기 번성했던 상인 도시가 밝혀지다

    경희대학교 한국 고대사 고고학 연구소 2021-06-30 694

    사진 1. Prisma Archivo/Alamy Stock Photo. 오늘날 타지기스탄 판자켄트에서 발굴된 8세기 벽화에는 소그드인으로 알려진 이란인들이 연회를 즐기고 있는 모습



    타지기스탄에서의 발굴로 5~8세기 번성했던 상인 도시가 밝혀지다

    『Archaeology』2020년 7/8월호, Eric A. Powell 작성.


    기원전 약 1세기부터 기원후 1,400년까지 중국과 유라시아의 나머지 지역을 연결하는 거대한 교역로인 실크로드는 서양에서는 지중해 세계로 운반되는 풍부한 비단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뉴욕대학교 고대 세계 연구소의 미술사학자 주디스 러너(Judith Lerner)실크로드는 제이드로드(Jade Road), 글래스로드(Glass Road), 혹은 러버브로드(Rhubb Road)라고 불릴 수 있다고 한다. 비단, 유리, 향신료, 완제품, 도자기 등 다양한 상품들이 이동했기 때문에 수십 개의 상품 중 어느 하나라도 그 이동경로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성스러운 길(The Sacred Road)도 한때는 적절한 호칭이었을 것이다. 기독교와 불교 선교사는 아시아 대륙을 건너기 위해 카라반을 이용했다. 서기 5세기부터 8세기까지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육로 무역로는 소그드의 길(Sogdian Road)라고도 불렸을 것이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살았던 동부 이란 사람인 소그드인은 한동안 실크로드를 이끄는 상인이었다. 러너는 소그드인들은 무역을 통해 큰 영향력을 얻었다고 한다.


    소그드인 외교관, 번역가, 예술가, 공예가, 연예인들은 실크로드의 길을 따라 카라반으로 이동하여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루트를 따라 상인 식민지에 정착했다. 소그드어는 실크로드의 공용어였고 한동안 소그드식은 중국 당 왕조를 휩쓸었다. 중국 왕비와 후궁은 소그드 패션을 받아들였고 당나라의 묘사에 소그드인 음악가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의 연주가 매우 수요가 많았음을 보여준다. , 소그디아나(Sogniana)의 사람들은 중국, 인도, 심지어는 비잔틴 제국과 같은 외부의 생각, 종교, 예술 양식에 매우 수용적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소그드인들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의 오아시스와 제라프샨(Zeravshan) 계곡 근처에 군집하는 수많은 독립 도시국가에서 살았다. 러너는 이러한 국가는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비교할 수 있다고 하는데, 소그드인들이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정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사마르칸트(Samarkand)는 가장 크고 번영한 도시 중 하나였다. 동쪽으로 약 60마일 떨어진 이 작은 도시 판자켄트는 사마르칸트의 위성도시와 같은 것이었지만, 그 자체의 활발한 경제를 지탱해주었다.




    사진 2. Ken Feisel 제공


    사진 3. Pavel B. Lurje 제공. 1940년대부터 발굴한 파자켄트 유적

    오늘날, 판자켄트의 성채, 궁전, 사원의 진흙 벽돌 폐허는 오늘날 타지키스탄 북부의 제라브산 강둑에서 약 3마일 정도 솟아 있는 무시무시한 도시 벽 뒤에 남아 있습니다. 러시아와 타지키스탄 고고학자들은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판자켄트를 발굴하여 소그드인들의 도시 생활의 이모저모를 밝힐 수 있었다. 특히 신화, 우화, 일상 장면을 묘사한 벽화가 많이 발견되는데, 이를 통해 소그드인들의 상상력을 알 수 있다.


    판자켄트 유적에는 두 개의 사원이 있는데, 하나는 조로아스터교와 관련된 사원이며 하나는 판자켄트의 수호신 나나의 사원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는 소수의 불교인과 기독교인도 살았다고 추측된다. 2016년 작은 목조 불상이 발견되었고 2019년에는 시리아 기독교 문자로 쓰인 도자기 역시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는 8세기 때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755년 소그드 장군인 안녹산은 당 황제에 반란을 꾀했다. 그러나 반란은 실패하여 중국 내 소그드인의 영향력은 차츰 사라진다. 게다가 아랍이 중앙아시아를 침공하면서 소그드를 지도에서 거의 지워버렸고, 소그드의 주민들은 곧 대부분 잊혀졌다. 판자켄트와 히소락(Historak) 유적의 발굴은 이 시기 소그드 문화에 대한 자료를 제공한다.



    * 본 글은 『Archaeology』 2020년 7/8월호에 실린 글을 요약한 것으로, 본 연구소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원문을 참조하세요

    https://www.archaeology.org/issues/386-2007/features/8756-a-silk-road-renaiss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