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그 연구의 역사
한국고대사, 유라시아를 품다

흉노와 훈족은 같은 민족이었을까 | 연구소

1. 논쟁의 발단

흉노가 서쪽으로 이동한 시점은 서기 1세기 말이었다. 당시 국력이 강대해진 한나라와 그에 부의한 남흉노의 합동세력에 밀려서 질지선우의 북흉노는 서기 98년에 알타이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그마저도 지고 말았다. 북흉노의 잔존 무리들과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서 중앙아시아로 도망쳤고, 그들은 서기 158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역사기록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훈’은 200년이 지난 서기 350년경에 동유럽의 게르만족의 변경에서 살고 있었던 알란족을 침략하는 강력한 유목국가로 서양의 기록에 갑자기 등장했다. 훈의 압박으로 그때까지 동유럽에 거주하고 있던 게르만족들을 서쪽으로 이동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서양의 고대세계를 종언시킨 큰 사건인 ‘게르만족의 대이동’의 원인이 훈족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니 여기에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로서 동서양 기록에서 ‘훈’과 ‘흉노’가 서로 친연성이 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두 집단의 관련성은 흉노는 고대에 ‘훈느’로 발음되어서 훈과 발음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이외에도 동서양의 기록에서도 유사성이 보인다. [위서]“서역전”에 속특국(소그드국)에 대한 언급에서 溫那沙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를 內田吟風은 ‘후나스탄Hunastan'이라고 추정했다. 속특국을 엄채(알란)의 후예라고 하면서 흉노가 그를 멸해서 3대까지 이르렀다고 하는 바, 이는 바로 훈이 알란족을 멸망시켰다는 서양의 기록과도 부합하는 부분이다. 중국의 사서에서는 奄察(알란)을 무너뜨린 한 집단을 ‘흉노’라고 기록했다. 중국의 사서에도 서기 350년에 북흉노라는 집단이 게르만족의 변경인 알란국을 침략했다고 했으며, 로마의 기록에는 376년에 훈이 알란보다 서쪽에 위치한 크림반도를 침략했다고 한다. 두 기록을 연결하면 하나의 집단이 점진적으로 서쪽으로 침략해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언어적 비정에는 많은 이론이 있으니 확정적이지는 않다는 점도 잊을 수 없다.

흉노와 훈의 관련성이 처음 제기된 때는 18세기로 프랑스의 역사학자 드 기뉴가 제시했다. 그가 활동할 당시는 고고학적 자료란 거의 없을 때였기 때문에 단편적인 언어학적 자료에 서양 비잔틴의 많은 자료와 중국의 사서를 비교하여 두 집단의 관련성을 주장했다. 드 기뉴의 하지만 18~19세기의 유라시아 역사가 대부분 그렇듯이 극히 단편적인 자료로 다른 집단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슈메르와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련설, 아틀란티스, 뮤 대륙 등 극단적인 전파론과 관련성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등장하던 시기였다). 지금도 한국에서 회자되고 있는 아틀란티스, 뮤대륙설 등도 이러한 18~19세기의 이러한 전파론적 시각에서 등장했던 것이다. (자세한 것은 로널드 프리츠 저, 2010년에 출판된 [사이비 역사의 등장]을 참고하면 좋다).

훈을 직접 본 로마인의 기록에 따르면 그 왕인 아틸라는 키가 작고 눈이 작은 몽골인의 특징을 지닌다고 했다. 고고학 유물로 보면 흉노와 훈의 관계는 구리솥(동복)으로도 관련이 된다. 구리솥은 사방을 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이 주로 쓰는 조리도구이며, 제사에서도 사용된다. 구리솥은 타원형의 스키타이식과 양동이처럼 생기고 손잡이가 ㄷ자형태인 흉노식으로 나뉜다. 흉노식은 북 중국과 몽골은 물론 동유럽까지 분포하여서 흉노와 훈이 살았던 지역 모두에서 발견된다. 이렇듯 흉노와 훈의 사이에는 단순한 언어 뿐 아니라 역사와 고고학으로도 유사성이 상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두 집단 사이의 유사성을 곧바로 같은 계통의 민족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2. 현대인의 편견이 개입된 ‘흉노-훈 동족론’

훈과 흉노가 명칭과 유물에서 유사성이 보인다는 점은 현대 민족중심의 국가와 다르게 살았던 고대 유목사회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유목민들은 토지를 기반으로 성립했던 농경사회와 달리 유목이 가능한 초원지대를 찾아서 이동하는 유목민은 목초지의 확보, 교역 등을 확보하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종의 계약사회였다. 흉노가 중국에 쫓기어 서쪽으로 도망간 후에, 남은 사람들은 곧바로 새로운 목초지와 교역을 약속한 새롭게 발흥흔 선비(鮮卑)의 일부가 되었다.

한편 동유럽에서 훈이 크게 강성하자 그와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에프탈(Hephtalite, 한문으로는 厌哒이라고 함)이라고 하는 집단은 자신의 이름을 ‘하얀 훈’이라고 바꾸기도 했다. 강력한 유목국가를 상징하는 훈이라는 이름이 새로운 계약관계를 맺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분명한 점은 유목민들에게 자칭 또는 타칭하는 명칭이 결코 종족적 계통을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왜 우리는 훈과 흉노의 관련성을 곧바로 ‘같은 민족’의 논쟁으로 귀결시켰을까? 엄밀히 말하면 드 기뉴의 논의는 19세기의 극단적인 전파론에 집착했던 시절에 나온 것이니 그냥 하나의 가설로 남아있었다고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논의는 1930년대에 다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연구자 이노스트란체프가 그의 논의를 발전시켜서 훈=훈족이라는 설을 본격적으로 등장시켰다. 게다가 당시 유라시아 전역을 장악하는 소련의 고고학자들은 동유럽에서 발견되는 동복, 흑해연안에서 발견되는 중국계의 거울이나 동검 등과 같은 몇 개의 고고학적 유물과 연관지어서 ‘흉노=훈 동족설’을 설득력이 있게 유포했다. 이 설의 재등장은 단순한 학문적인 흐름만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사회적인 분위기와도 관계가 있었다.

당시는 스탈린의 민족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흉노-훈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는 민족은 언어, 인종, 및 문화의 공통성으로 탄생한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하는 스탈린의 민족이론에 근거한다. 게다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포괄하는 소련의 광대한 영역에 걸맞는 역사적 이야기가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의 각 나라는 사회주의권으로 재편하던 시점이었고, 유라시아 동서를 관통한 흉노=훈의 역사적 이야기는 이러한 사회주의권의 등장과도 잘 부합되는 이야기였다. 소비에트로 유라시아를 재편하는 당시의 상황에서 훈과 흉노는 상당히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흉노=훈 동족론’과 관계된 문제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흉노-훈 동원설’은 유목사회의 특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논의이다. 이 정도의 시공적인 간격이라면 굳이 비유하면 미대륙에서 17세기에 보스톤에 정착한 사람들과 현재 캘리포니아 지역의 사람이 같은 민족인가를 묻는 정도일 것이다. 유목민은 엄청난 거리를 지속적으로 이동하며 사람들로 이합집산은 일상적이며, 흉노 자체가 여러 민족집단으로 구성되었는데, 어떻게 그들에게서 하나의 혈연적 계통을 논의할 수 있단 말인가. 5천년간 이어져온 유목민의 역사에서 이런 정도의 시간과 공간적 공백을 뛰어넘어서 혈연적 관계를 맺는 경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근대에 들어서 토르구트족, 칼믹족, 신장성의 석백족 등은 수 천 km를 이동하여 거주한 경우가 종종있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근대의 국가 간의 복잡한 갈등관계가 얽혀있다. 흉노의 경우처럼 250년 정도 정보가 없다가 갑자기 수천km 떨어진 곳에서 툭 튀어나오는 경우는 없다.

흉노와 훈족의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답은 내리기 어렵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처음 질문부터 전제가 잘못되었다. 흉노는 ‘민족’이 아니라 여러 부족과 인종적인 특성을 지닌 집단의 연합체로 역사에 등장했다. ‘훈’역시 단일민족이 아니다. 사방을 끊임없이 이동해야하는 흉노나 훈이 하나의 혈연으로 묶여진 ‘민족’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흉노나 훈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이 아니니 모른다는 식으로 불가지론을 내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흉노와 훈이 많은 문화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흉노에서 시작된 발달된 철과 황금에 기반한 유목문화가 훈으로 이어져서 유라시아 동서를 잇는 역사의 원동력임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훈과 흉노의 유사성은 당시 유라시아 초원에서 역동적으로 발달했던 유목사회의 발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이것을 단순하게 민족의 문제로만 간주한다면 그들이 만들어 냈던 유라시아의 시공을 넘나드는 문화교류의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를 놓치게 된다. 이렇듯 흉노와 훈의 논쟁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더 중요한 초원의 진정한 역동성은 흘려버리는 것이 아닐까.

 

동유럽과 러시아 일대의 훈족이 남긴 철제무기와 마구, 흉노와 시공간적으로 떨어져있지만 상당히 유사성이 높다.

훈족, 투르크, 흉노의 기마인들 (이상은 Scythia Hurgarica에서 발췌) 헝가리 고고학에서 훈족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인 동시에 관심거리인듯하다.

​동유럽쪽 러시아에서 출토된 동복,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비슷한 것이 출토된다. 

 
송나라때 한 서역제국을 그린 그림. 좌측 상단에 에프탈, 즉 엄찰국이 표시되어있다. 아마 당시 중국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서쪽끝이 아랄해와 흑해사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필진 : 강인욱 | 등록일 : 2017-01-20 16:34:28 | 조회 : 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