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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의 영웅이 되어버린 알타이 초원을 여행한 8백년 전의 도사님 - 구처기(邱處機) | 연구소

  알타이와 몽골의 초원고고학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남긴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엉뚱하게도 김용의 무협지 신조협려’ ‘사조영웅전의 캐릭터로 유명한 장춘진인(長春眞人)이라고도 불리웠던 도사 구처기(邱處機)였다. 그는 산동성 일대에서 활동하던 도교의 도사로서 1219~1222년 사이에 징기스칸을 만나기 위해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드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근처까지 여행하고 그 기록을 남겼고, 그 중에는 몽골과 알타이의 역사와 고고학적 자료에 대한 기록이 있다. 무협지의 주인공으로만 과장되게 묘사된 사람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가 활동했던 시절 이전에 이미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로 구법의 길을 떠난 사람은 혜초나 현장의 대당서역기와 같은 기록이 있다. 하지만 구처기의 길은 다른 구법승의 길과는 사뭇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 당시 중국과 그 주변은 발흥하는 몽골과 함께 금과 남송이 서로 겨루는 형국이었고,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 세계를 제패할지는 아직 불확실한 시점이었다. 이때 징기스칸은 당시 널리 유행한 도교의 진인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지혜를 구하고자해서 장춘진인을 사마르칸드로 초청했다. 당시 장춘진인은 자기가 살던 산동성의 액현에서 출발해서 연경(북경), 장가구, 몽골, 그리고 알타이를 거쳐 중앙아시아까지의 험난한 일정을 소화했다. 물론, 당시 몽골제국에서 그런 장거리 여행이라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장춘진인은 가는 곳곳의 풍경들, 심지어는 신기하게 보였던 몽골인의 풍습들도 자세하게 기록했다.

 
<구처기가 중앙아시로 가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


  그는
121912월에 고향을 출발해서 1220년에 몽골고원과 알타이, 중앙아시아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 후 12224월에 힌두쿠시 산맥을 지나 아프가니스탄 근처에 입성, 징기스칸을 만났다. 이후 그 해에 모두 3차에 걸쳐서 징기스칸을 만나서 나라의 경영에 대한 조언을 했다. 이때 그들의 대담은 耶律楚材가 정리해서 玄風慶會錄으로 남겼다. 이 책에서 장춘진인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3년의 세금을 면하는 등 경천애민할 것이며 지나친 살육을 금지할 것 등 그의 조언이 수록되어 있다. 징기스칸은 세계적인 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초원의 국가체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이미 느끼고 있었을 것이니, 장춘진인의 조언은 어쩌면 이후 몽골이 유목과 정착세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으로 나아가는 기틀을 세우는 데에 일조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몽골의 국가경영과 장춘진인의 정치철학은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와는 거리가 멀고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사마르칸드로 이동하는 경로이다. 장춘진인은 18명의 제자들과 같이 동행했는데, 그 중 李志常은 여정을 자세히 기록해서 長春眞人 西遊記를 남겼다. 이 책에는 생생한 필체로 당시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자연과 지리상황에 대한 상황이 있어 무척 귀중한 자료로서 역할을 하는 듯하다. 몽골 일대를 여행하며 옛 성터를 보고는 거란문자가 새겨진 토기편으로 거란성임을 안다던지 초원의 풍습과 자연환경 등을 기록한 박물학적 기록이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그 동북지역 산악을 통과해서 가는 길이 기록되었다.(책에는 金山으로 기록됨) 원문은 한문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1988년에 중국에서 간행된 成吉思汗封賞長春眞人之謎에 원문을 비교적 쉽게 풀어놓아서 읽기가 쉽다.

  장춘진인의 여행기는 러시아에서도 수차에 걸쳐서 소개되었기 때문에 몽골의 판석묘나 파지릭문화의 학사를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말로는 이 도사의 이름을 창춘이라고만 되어있고, 원문을 모르는 채 재인용을 반복하면서 등장했기 때문에 누군가 했었다. 아마 이렇게 널리 알려진 것은 1931년에 Arthur Waley가 영역을 해서 세계 학계에 소개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쨋거나,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최초로 알타이와 몽골지역의 고고학을 연구한(적어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니 초원고고학의 첫 페이지를 연 사람으로 제대로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무협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구처기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다 싶을 것이다. 바로 무협지 최고의 작가인 김용의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과 신조협려(神雕俠侶)에서 구처기는 호탕한 성격에 무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주요 등장인물이며 양강의 사부로 묘사된다.

  어쨌든 중국에서 알타이,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기록을 남긴 예는 아마 한나라 시절 장건이 가장 구체적인 예가 될 것이다. 당나라 때에는 이태백처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탄 출신도 있고, 서유기처럼 중앙아시아가 잠시나마 직접적인 관할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은 대부분 현재의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신강-중앙아시아 라인이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수천년 이어온 전통적인 문명교류의 루트인 초원루트를 피해서 이어놓은 인공적인 교역로이다. 그런데 일반인에게는 비슷해보일지 모르지만 원래 동서 교류의 루트는 실크로가 아니라 실크로드에서 더 북쪽의 루트로 험준한 고원을 통과하는 초원지역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구처기에 대한 기록 장춘진인서유기는 그런 점에서 알타이와 몽골이 초원에 대한 귀중한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혜초나 현장의 기록에 결초 밀리지 않는 가치를 지녔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실크로드라는 후대의 교역로에만 집중을 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구처기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한문에 대한 지식만 좀 있었어도 그에 대한 주석서라도 발행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학부부터 고고학을 한 처지에 그러기는 어렵고, 나중에 한문학자하고 공동작업을 해서라도 구처기의 진정한 공로를 다시 세상에 밝히고 싶다.

  구처기가 중앙아시아로 떠날 때는 이미 70이 넘은 상태였으니 어쩌면 목숨을 건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노력으로 몽골을 세계를 제패하는 제국으로 거듭났고, 그가 밝혀낸 몽골과 알타이에 대한 기록 또한 값진 것이 그의 공로는 재평가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구처기와 징기스칸의 만남 상상도>

 
필진 : 강인욱 | 등록일 : 2015-08-25 22:23:51 | 조회 : 1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