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그 연구의 역사
한국고대사, 유라시아를 품다

130년전 부산에서 흉노를 연구했던 영국인 - 에드워드 파커 | 연구소




  2년짜리 흉노연구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 이런저런 자료를 모으면서 가끔 회의가 들때가 있곤했다. 과연 한반도의 땅끝에서 흉노라는 키워드가 얼마나 유효할까?라는 생각이었다. 경남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상 주로 일본과의 관계에만 연구가 집중되는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남한은 어차피 북방 초원에서 보면 멀기 때문에 서울이건 부산이건 지역적인 위치는 초원의 연구에 큰지장이 없다는게 내 생각이었고, 또 반대로 지도를 뒤집어서 본다면 부산은 유라시아 대륙의 출발점이라는 의식의 전환도 가능하다.



  구한말 하국에서 그무했던 유럽인들은 당시의 대부분 외교관들이 그렇듯이 지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머나먼 동방으로 와서 그 지역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하던 예는 중국, 일본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당시 국제교류의 중심이었던 부산에서 1885~1887년 사이에 영국영사관의 부영사(副領事)와 총영사대리로 근무한 에드워드 파커(1849~1926)라는 동방학자가 있었다.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 멘체스터 대학의 중국어 교수로 근무하며 여러 저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에드워드 파커 개인에 대한 정보나 연구는 극히 소략한 편이지만,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 중에서 중국 고대사와 관련된 것으로느 [A thousand years of the Tartars, 1895년 출간]나, [Ancient China Simplified(고대중국간사), 1910년 출간]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명성에 비해서 개인적인 정보는 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이상할 정도로 한국 관련된 자료도 없다. 내가 알아본 바로도 한국에서 에드워드 파커의 행적이나 그가 남긴 연구에 대한 분석이 거의 없다. 단지 D.P.Branner가 199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의 자취를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Branner. D.P, The linguistic ideas of Edward Harper Parker, Journal of the American Oriental Society, 119-1)

   그는 Liverpool출신이며 어머니를 11살 때 여의고 아버지는 '외과의사'였다. 당시의 외과의사라는 직업은 허드렛이을 하는 비교적 천한 직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파커의 어린시절은 그렇게 부유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James Summers로부터 1년간 중국어를 배우 후 나이 20세인 1869년에 북경의 영국영사관(British Consular)로 학생겸 통역으로 파견된 것으로 보면 언어적인 재능이 상당히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은퇴하는 1895년까지 주로 중국에서 머물며서 부산에도 2년간, 영국과 캐나다에 2년간 공무와 학업으로 머문 바 있다. 또 사천과 해남성에도 1년간 머무르는 등 외교관이라는 업무 이전에 다양한 동방학의 연구에 종사했었다. 이러한 토착화된 중국의 연구배경에는 그의 부인이 중국인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같다.


  Branner는 그의 부인이 객가출신이라고 보아으나, 정확한 증거는 없다. 외교업무와 동방학을 병행하다 학문에 전념하는 동방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1901년에 리버풀에서 University College에서 Reader로 근부ㅏ다 1901년에 멘체스터의 Victoria University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파커가 부산에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지 7년만에 출판한 [타타르의 천년역사]는 한마디로 '타타르'로 대표되는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에 대한 역사를 다룬 것이다. '천년'이라 함은 흉노의 묵특선우 이래로 징기즈칸에 이르는 시기를 대체로 천여년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거이다. 물론 19세기 말부터 서양의 동방학자들에 의한 초원민족 연구는 제법 있었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바는 다른 초원사 연구자와달리 파커는 한국사 및 한국의 사정에 능통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연구배경이 혹시 그의 초원사 연구에 투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흉노의 기사에는 4번, 선비의 기사에는 11번, 유연고 돌궐의 장에서는 5번에 걸쳐 한국이 언급되었다. 주로 한국에 대한 기사는 한무제가 흉노의 정벌 즈음에 조선과 전쟁을 한 부분과 만리장성의 끝일는 내용이 들어있다. 

  파커가 언급한 '타타르'는 오랑캐를 말하는 범칭 중 하나이다. 타타르만큼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명칭도 없다. 사할린과 아시아대륙 사이의 좁은 해협이 타타르이고 지금도 우랄산맥 서쪽에는 러시아 연방 내에 타타르족 자치공화귀 있다. 한문으로는 '韃韃'이라고 불리웠던 서기 7~9세기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투르크계 유목민을 통칭하던 명칭에서 유래된 타타르는 중국 북방의 여러 나라를 비롯해서 때로는 중국을 이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1) 민족명으로 타타르족을 지칭하는 협의의 타타르와 2) 중세시대 북중국의 유목민에 대한 범칭으로 쓰이는 광의의 타타르로 나뉜다. 파커가 썼던 타타르라느 명칭은 후자에 해당한다.

   현재로서는 파커의 한국에서 행적은 묘연하며, 그가 저술한 한국에 대한 책으 1887년에 간행된 "The Manchu Relations with Corea"이라는 책이 유일하다. 아직 이 책을 접할 수 없었지만, 더 뒤진다면 약 130년 전에 중앙아시아, 중국, 그리고 한국을 연구하며 실제로 한국에서 살았던 한 동방학자에 대한 많은 정보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파커는 1885~87년 부산에 살면서 틈나는 대로 여러 사서를 뒤지며 흉노를 비롯한 여러 초원민족의 역사를 연구했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부산에서 북방 초원사를 연구한 최초의 사람은 아니었을까? 물론 그의 연구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타타르 천년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재가되고 있다. 구글북스에 찾아보니 초판이래로 1901, 1923, 1924년, 2004년, 2010년, 2011년에 출판되었다고 되어있다. 또 2008년도에는 러시아에서도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다행히 러시아어 번역자는 파커의 한역본 발음을 현대 러시아어음차로 해놓아서 19세기 웨일드시스템이 낯선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 그 연구의 중요성이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좋은 반증이다. 파커의 책이 흥미로운 점은 초원민족 중에서도 특히 흉노, 선비 등으로 이어지는 동북아시아 북방의 민조들을 중점적으로 기술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틈나는대로 파커라는 사람에 대한 자료를 모아 볼 작정이다

   세차고 짭쪼름한 바닷내음이 넘치는 부산의 바닷가에서 초원을 이야기했던 사람이 이미 19세기말에 있었다는게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된다. 구한말에 이미 현대의 국경을 넘어선 연구를 해왔던 에드워드 파커의 모습은 남한 한쪽 끝에서 묵묵하게 북방고고학을 연구하는 나에게는 하나의 귀감이다. 백여년을 넘어선 일면식도 없는 한 영국인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다. 또 그의 참모습을 발굴해서 아리는 것이 내 역할인 듯 하다.


 

 
필진 : 강인욱 | 등록일 : 2015-08-24 17:38:36 | 조회 : 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