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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중국 고대의 불교 의학 | 연구소

중국 고대의 불교 의학

 

피어쓰 살구에로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아빙톤 컬리지)

번역 이현숙(연세대 의학사연구소)

 

역자의 말

이 글은 중국 불교의학에 대한 연구현황을 소개하기 위해 Pierce Salguero, "Buddhism & Medicine in East Asian History, Religion Compass Vol. 8, John Wiley & Sons Ltd, 2014, pp.239-250 가운데 History of Buddhism and Medicine in China(pp.242-4)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중국의 불교 경전에는 인도 의학이론과 임상 경험 뿐 아니라 종종 상당한 분량의 중국식 의학지식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 표면적으로 거의 모든 중국 불교 경전은 산스크리트어의 번역이라고 하였지만, 학자들은 적어도 경전의 일부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많이 밝혀냈다. 이러한 외경이나 가짜 번역을 통해 종종 인도와 중국 의학이 어떻게 혼합된 형태로 나타났는지 풍부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어 경전) 번역이 확실한 것으로 알려진 경우라 할지라도 대부분 중국의 불교 번역가들은 인도의 사상과 관습을 중국의 수사학적, 정치적, 문화적 기대에 맞추었다(Salguero 2014). 따라서 중국에서 번역된 불교 경전은 인도의 역사보다 중국의 사회적, 지적 역사와 관련이 더 많다.

불교가 중국에 도입 된 이래 첫 1 세기 이후 계속해서 불교 기관과 성직자들은 의료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초기 중국에 널리 알려진 불교 포교사들은 대부분 다양한 의학 지식을 특별하게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Fu & Ni 1996). 6 세기까지 불교는 ​​중국에서 사회적 정치적 생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불교적 치료법은 의학 사상의 시장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불교가 가진 신비하고 효과적인 치유력에 대한 이야기들은 도교 술사나 영매(spirit mediumship), 세속적인 중국 의사들에 비해 불교 승려나 기관이 유리한 위치를 가질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다 (Davis 2001; Strickmann 2002; Salguero 2009, 2010; Campany 2012). 불경 번역가와 주석가도 중국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불교 의학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번역의 요체를 만들었다(Salguero 2011). 수많은 중국의 외경에서는 불교 계율과 불교도적인 생활 및 다른 기본적인 의례를 행하고 지키도록 하기 위해 건강과 웰빙에 대한 카르마적인 보상을 약속하였다(Salguero 2013b). 다른 외경에서는 불교의 명상과 금욕적인 행위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장소로서 병든 몸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었으며(Capitanio 2014; 참조 Salguero 2012), 또 다른 외경에서는 인도의 의료 및 위생 지식이 우월하다는 점에 대해 논쟁을 함으로써 중국 독자가 이러한 사례를 확실하게 따르도록 유도하였다(Salguero 2014, pp. 11216). 불교 의학을 호의적으로 소개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중국 사회에서 대체로 성공하여 중세 중국인들 상당수가 불교 치료법을 가치 있게 여겼다(Chen 2013).

인도 의약과 치료법의 상당수가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통해 중국에 소개되었으며, 이러한 의약의 교환의 상당 부분은 다른 문화의 전파와 관련이 있다(Chen 2007, 2013). 그러나 중세 불교 사원에서 치료자들이 주로 제공한 써비스는 불교의례, 독경, 다라니 주문 암송, 치유를 관장하는 신을 부르는 등의 행위들로 이루어졌다(Veith & Minami 1966, Birnbaum 1989a, Davis 2001, Strickmann 2002, McBride 2011). 그만큼 이러한 요법의 인기는 주변부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학자들은 불교의 사상과 관행들이 제국의 의료 관부와 관련 하에 저술된 의학서에 영향을 끼친 많은 사례들을 목록화 하기도 하였다 (Deshpande 2003, 2008). 발생학(Chen 2005c)이나 안과 (Deshpande 1999, 2000, Deshpande & Fan 2012)와 같은 특정한 분야에서 불교의학의 영향이 지대하였음이 밝혀졌다. 유명한 중국의 의사 손사막(孫思邈, 581-682)에 대해 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의 저서 비급천금요방이 인도 의학과 의술, 의료 윤리 등을 서술하였기 때문이다 (Sakade 1998; Zhu 1999; Chen 2013, pp. 22477).

중국의 불교 의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의사들이 남긴 공식적인 저술보다도 돈황과 Turfan, 그리고 여타 실크로드에서 복원된 문서에서 훨씬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많은 약리학, 식이요법, 성 과학, 민간요법 및 다른 치료 방법들은 5세기부터 11세기 초기 이르기까지 불교와 도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일련의 자세한 연구가 중세 (인도와 중국의학이 혼재된) 혼합 의학 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Kalinowski 2003; Lo & Cullen 2005; Chen 2005a, 2005b; Despeux 2010). 이를 통해 중국 의학계의 전체적인 추세를 알아볼 수 있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이 연구로 인해 중세 중국 의약에 대한 역사 기록 및 불교 요법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한 시선이 서서히 뒤집히고 있다.

지금까지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불교 의학사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내용은 텍스트 관련 지식에 절대적인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아주 독창적인 연구가 인도의 물질적 문화 및 중국 수도원의 목욕, 화장실, 위생, 그리고 세척에 대해 이루어졌다(Heirman & Torck 2012). 이뿐만 아니라 최근 약사불에 대해 도상과 약사여래에 대한 의식 공간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도 진행되었는데 (산스크리트어로 Bhai ajyaguru, 중국어로는 Yaoshifo 藥師佛, 일본어로는 Yakushi nyorai 藥師如來), 치료를 담당하는 주된 치유의 신들 가운데 하나에 대한 연구(Jing 1991; Ning 2004 연구를 보라)도 이루어졌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추후 더욱 더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연구되어야 하는 또 다른 분야는 중세 이후에 관한 것이다. 서양 언어로 번역 된 동아시아 불교와 의학에서 불교의학에 대한 정보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매우 적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첫 번째 밀레니엄 이후 인도와 의학 서적을 공유하면서 중국 불교 저서의 인기가 떨어졌는데도 송대(960-1279) 불교 의식에 근거한 치유가 계속되었고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Davis 2001; Liu 2008). 그러나 불교 의학의 지식이 여성 쪽으로 넘어가는 양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명대(1368 1644) (Chen 2008)에는 여성을 홀대하고 남성 중심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불교 사원과 승려들은 청대(16441912)에도 의료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담당하였다.

중국에서 의약이 현대화와 세속화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한 세기를 거쳤지만, 20세기에도 여전히 불교와 의약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은 특히 중국 본토 밖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 둘의 연계를 보여주는 가장 가시적인 사례 중의 하나는 츠치(慈濟, tzuchi.org.tw) 재단이다. 이 재단은 대만의 거대 민간조직으로, 1960년대 재단이 설립된 이래 대만 안팎에서 긴급구호물자와 다수의 병원을 설립했다. 그 활동은 전통적인 인도 혹은 중국 모델과는 대조적으로 근대 과학적 의학에 기초하고 있다. 츠치는 거의 2천년동안 중국 불교의 특징이었던 치유와 개종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여전히 상기시켜준다.

 
필진 : 관리자 | 등록일 : 2017-05-15 14:22:42 | 조회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