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그 연구의 역사
한국고대사, 유라시아를 품다

송호정 교수의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에 대한 서평을 읽고 -심재훈- | 연구소


송호정 교수의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에 대한 평을 읽고

 

심재훈(단국대 사학과 교수)

지난 8월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푸른역사)라는 대중서에 가까운 책을 한 권 냈다. 욕도 먹고 칭찬도 받았지만, 한국 고대사학계에서의 평가가 내심 궁금하던 참이었다. 물론 이미 소장학자 두 분이 비교적 상세한 서평을 썼지만(http://egloos.zum.com/yeohwi/v/1908746; http://www.ikaa.or.kr/), 그 분들을 고조선 전문가로 보기는 어렵다. 과분하게도 [역사비평] 117(2016년 겨울)에서 국내 고조선 연구의 권위자인 송호정 교수의 서평을 실어주었다.

사적인 이야기가 많은 그 책을 재밌게 읽어 주고, 내가 제기한 주요 논점들에 대해서도 대체로 동의한다는 송 교수의 호의적인 평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래도 몇 가지 꺼림직 한 부분이 있어서 함께 고민해보자는 차원에서 반론 아닌 반론을 제기해보고 싶다.

첫째,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의 지적처럼 송 교수 역시 내가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내세운 부분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 이유에 대해 대체로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어렵던 시절에 미국 유학을 가 중국 고대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를 지도교수로 모시고 박사과정을 거쳐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자리잡은 교수가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칭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충분히 타당한 지적이다.

다만 이전에 쓴 글에서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을 내기 전까지 내가 비주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일반 사회적 기준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가 몸 담고 있는 학계를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에서 최소한 SKY 출신이 아닌 사람들 중 학계에서 자신을 주류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아마 KY 출신까지도 가끔씩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 정도의 괜찮은 스펙을 갖춘 사람까지 스스로를 비주류로 여겨야 할 만큼 한국 학계(특히 내가 속한 동양사학계)가 경직되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과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인식은 내 스스로 유형무형의 불합리를 경험하며 형성되었고, 그걸 깨보기 위해서 더 절치부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송 교수까지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는 걸 보면, 한국 사회의 큰 적폐인 학벌 카스트에 상당한 균열이 생기고 있는 듯해서 반갑다. 앞으로 최소한 학계에서라도 실력과 업적 이외의 다른 평가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길 바라며, 나도 이제 비주류 피해의식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둘째, 내가 그 책에서 얘기한 내용이 한국 고대사학계의 견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비판한 학계의 민족주의적 연구 경향(특히 고고학 자료의 남용 문제)에 대해서는 이러한 연구가 민족주의적 연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역사 연구의 기본인 자민족 중심의 해석이 전제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옹호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고조선에 대한 과장된 인식 형성에 상당히 일조한 한국 고대사학계의 견해가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니 일면 다행스럽고,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하다. 내가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의 고조선 연구를 다 읽은 것은 아니니 물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직 그 위치조차 모호한 위만조선 이전 고조선의 연대를 춘추시대 혹은 그 이전까지 소급하여 중국 동북지역의 특정 고고학 문화들과 일치시키려는 한국 학계의 연구 경향은 나뿐만 아니라 국제학계에서도 수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더욱이 이러한 연구 경향이 "자민족 중심의 해석이 전제된 것"이라는 항변은 국내의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사 연구에서 어느 정도의 모호한 해석은 용인되어도 무방하다는 얘기인지 궁금하다. 역사 연구의 기본이 자민족 중심이라는 언급 또한 그 현실적 불가피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학계에서 운위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편협한 역사 인식을 합리화시킬까봐 우려스럽다.

얼마 전 한국사학계의 원로 한 분이 국내의 중국고대사 연구가 결국 한국 고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내 역량이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이 아닌 세계 학계에 공헌하기 위한 것이다.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 아직 제도적으로까지 공고히 자리하고 있는 한국 중심 연구 경향은 인문학 수준 제고에 장애가 될 뿐이다.

 

셋째, 그 책에 실린 내 기자조선 연구 소개에 대한 것으로, “저자와 같은 견해는 일찍이 1963년에 출간한 북한 학계 리지린의 『고조선연구』에서 명확히 정리되었고, 국내에서는 노태돈 역시 이미 언급했던 내용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기자동래설의 부정이 한국 학계의 일반적 인식이고, 내 연구 역시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지린과 노태돈을 비롯한 국내의 기자동래설에 관한 연구가 대체로 그 동래의 진위 여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내 연구는 그 전설이 생성된 경위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이지린은 그 전설이 진한대에 위조되었다고 비판하면서도, 그 설을 통해서 기원전 11세기 조선의 존재를 확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나는 진한대에 들어서 조선이 중국 동북지역의 대표세력으로 각인되었기에, 원래 조선과는 무관한 기원전 11세기 경 기자 일족의 이주 이야기를 전해들은 당대의 학자들이 그 이주 지역을 시대착오적으로 조선으로 간주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한대에 현인으로 부각된 기자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러한 전설 생성에 일조했을 것이다. 요컨대 고대 중국 지식인들의 시대착오적 기자조선사 만들기를 파헤친 것이다.

송 교수를 비롯한 국내의 연구자들 중 아무도 이 설에 주목하지 않았고, 이 설을 수용하기도 주저하겠지만, 나는 사실 이 한대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고조선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보고 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거치며 대부분의 서적이 사라졌다가 한대에 세상이 좋아지자 민간에 숨겨졌던 책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에 나온 그 서적들은 이미 훼손이 심한 상태여서 유흠(劉歆)과 유향(劉向) 부자를 비롯한 한대의 학자들이 그것들을 재정리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가 선진(先秦) 시대의 문헌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전래문헌은 사실상 한대에 재창출된 것이라는 얘기다. 고조선에 관해 일정한 이야기를 전하는 『위략(魏略)』이라는 책을 비롯하여 단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관자』나 『산해경』, 『전국책』의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 역시 한대 이후의 산물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한대의 인식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큰 이러한 문헌 기록상의 한계가 전국시대까지 고조선 중심지의 확정에 이설(異說)만 분분한 까닭을 잘 설명해준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도 그 소모적인 논쟁은 지속되겠지만, 이제 국내 학계에서 그 불가해성뿐만 아니라 오래된 고대국가 고조선에 대한 희망까지도 재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02년 그 연구를 하버드아시아학 저널(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에 발표하고 나서 국내 학계의 작은 반응이라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그 글을 꼼꼼히 읽은 국내의 연구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국사 전공자들과 영어권의 연구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체로 우리가 이미 다 얘기한 거다라는 반응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자가 드문 구미에서 한국사 관련 논문을 쓸 때 기본적인 사실까지 설명해야 하니, 그런 글을 읽어본 국내의 연구자들의 반응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학문 수준이 그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역량의 총체라고 보고 있는 나는 영어권의 유수 학술지나 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사 관련 논저의 수준이 한국 학자들의 선입견처럼 낮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민족이라는 짐에서 자유로운 그들의 연구는 대체로 트랜스내셔널을 지향하여 기존 한국 학계에서 보기 어려웠던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국내의 한국고대사 전공자들도 영어권에서 출간되고 있는 논저들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마침 몇 달 전 마크 바잉턴의 부여사 연구(The Ancient State of Puyŏ in Northeast Asia: Archaeology and Historical Memory)가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다. 국내의 연구자들이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글을 마치며 연구서도 아닌 책의 짧은 서평에 대해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닌지 조금 쑥스러워진다. 그래도 작은 문제라도 꼬장꼬장하게 따지는 게 연구자 본연의 임무라고 자위하며, 이 글이 더 많은 건설적인 논쟁을 유발할 수 있길 기대한다.


 

 
필진 : 관리자 | 등록일 : 2016-12-27 15:26:55 | 조회 :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