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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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P(Early Korea Project)

하버드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회고 1 | 연구소


하버드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회고

 

 

마크 바잉턴 교수(Dr. Mark E. Byington)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I. 서구에서의 한국 고대사 연구 암울한 전망

 

본 연재에서는 한국고대사연구실(Early Korea Project)에 관한 회고와 평가를 하려고 하는데, 한국고대사연구실은 영어권에서 한국고대사 분야의 발전을 목표로 2006년에 하버드 대학교의 한국학 연구소에서 필자가 구상하고 조직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동기는 본인이 학문적으로 훈련 받은 분야에 남고 싶은 개인적인 바램과 영어권에서의 한국고대사에 대한 연구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전반적인 필요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1994년에서 2003년까지 나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지역의 고대사 및 고고학에 초점을 맞춘, 특히 부여, 고구려 및 발해의 정치 조직체들과 관련된 연구를 하며 하버드 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2003년에 필자는 한국 고대사 전문가를 고용하는데 관심 있는 대학 학과, 특히 필자 본인의 연구 관심을 이어가고, 그 분야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학과를 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좌절에 빠졌다. 가장 주된 문제는 한국고대사 분야가 전혀 발전되지 않았던 것이고, 동아시아학을 가르치는 학문 프로그램들은 전형적으로 여전히 한국을 중국과 일본보다는 덜 중요시 생각했다. 2003년 당시의 필자의 전망은 전혀 좋지 않았고, 그러한 상황들이 필자로 하여금 한국고대사의 발전을 저해하는 핵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구축하게 만들었다.

 

2006년 이전에는 영어권 학계에서 누구도 한국고대사를 한 분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한국학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 서서히 하나의 학문 분야로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 규모가 아주 작았고, 역사적 관심은 20세기와 그 이전 시기인 조선 왕조에 맞춰져 있었다. 한국 역사에서 고대와 중세 시기는 영어 학문의 한 분야로 싹트지 못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된 요인은 이 분야의 학자 수가 적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분야 학자들 중 고대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또한 한국고대사 연구를 기반으로 교수직을 확보할 수 있는 전망도 희박했다. 서구 학계에서 중국과 일본에 대한 연구는 한국에 관한 연구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었고, 중국과 일본의 고대사에 관한 분야 역시 발전했다.

 

2000년 이전의 한국고대사에 관한 출판은 소수의 한국사 개설서, 한국 고대시기와 관련된 전문 주제에 초점을 맞춘 소수의 논문과 소논문, 1945년 이전의 일본 학자들이 작성하고 영어로 번역된 몇몇 논문 및 다양한 특정 주제에 관한 소수의 논문(저자가 한국 학자인 것도 있었고, 서구 학자인 것도 있었다) 등에서 피상적으로 다루어 졌다. 그러나, 학생들 또는 인정받는 학자들이 한국고대사 연구를 가능케 하고, 촉진할 만한 충분히 안정적이고 일관된 한국고대사의 토대는 없었다. 문제는 역시 이 분야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만한 전문가의 부족과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졸업생이 교수직을 확보할 가능성의 부재였다.

 

2000년대 초 북미의 학문적 기관들이 처한 상황 또한 한국고대사 연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추가적인 원인들을 제공했다. 그 첫 번째 원인은 전근대보다 근대 시기에 초점을 맞추는 강의들이 많아진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 조선 시대를 다루는 강의들과 출판물들을 제외하면 한국사 전사(全史) 혹은 통사(通史)를 다루는 강의와 간행물들에서는 한국 고대나 중세시기는 최소 수준으로만 다루었다. 두 번째로 더 심각한 문제는 종신 재직권을 추구하는 교수들에게 많은 임무가 요구된 것이다.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한국고대사 전문가가 교수직에 임용될 경우, 교수 임무와 위원회 임무에 시달리는 나머지 자신의 전문 분야인 한국고대사를 계속 연구하거나 발전시킬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대신 교실을 채우고(인기 많은 과목을 가르쳐서) 높은 교수 평가를 받으며, 위원회에 참석하거나 학부 내 행정 부담을 지고, 긍정적인 동료 평가를 받는 한 권 또는 그 이상의 단행본들과 다수의 학술지 논문들을 발표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이 모든 임무는 종신 재직권을 확보하는데 필수이다. 하지만, 종신 재직권을 보장받아도 교수 임무와 학과장직을 포함한 그 외의 다른 학과 임무를 여전히 수행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러한 임무 수행들이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부족한 분야의 의미 있는 발전을 막거나 크게 방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암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한국 고대시기에 대한 지식 확보가 그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한국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더욱이 2003년 말에 발생한 고구려 역사에 관한 국제 논쟁은 지속적인 정치적 시사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동북 아시아 초기 역사 이해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이 논쟁으로 인해 고구려 역사와 고고학에 관한 하버드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는 2005 4월에 필자가 조직하고 지휘했다. 이 회의에서는 6개국(한국, 일본, 중국, 호주, 프랑스 및 미국)에서 온 전문가들이 고구려 역사와 고고학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18편의 발표들이 있었다. 북미에서 열린 동종 최초인 이 회의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고, 이는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 한국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광범위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고구려 논쟁은 또한 인기 많은 위키피디아(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를 포함하여 인터넷 자료에서 읽을 수 있는 고구려와 한국고대사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애석하게도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06년에 서구 학계에서는 영어로 된 한국고대사 연구의 토대가 부족한 것을 심각하며, 불필요한 문제로 인정했다. 영어로 된 중국과 일본의 고대사 연구는 수십 년 동안 발전해 왔으며, 오래 전부터 존중받는 학문 분야로 인정받아왔다. 북미에는 한국고대사를 하나의 분야로 발전시킬 관심과 자원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이를 하나의 학문 분야로 구축할 만한 일관된 기구와 토대가 부족했다. 한편 교수직을 확보하고자 하는 한국고대사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어려움에 부딪혔는데, , 미래가 불투명한 이 분야를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 수가 아주 적었고, 그 결과 서구 학계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의 미래는 아주 암울했다.

 

이것이 2005년에 필자가 직면했던 현실이었다. 본인은 2003년에 하버드에서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역의 고대사와 고고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마쳤지만, 필자의 한국고대사에 대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교수직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학계 환경에 직면했다. 교수 채용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4년을 보낸 필자는 서구 학계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라도 생기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A Retrospective Account of the Early Korea Project at Harvard

 

Mark E. Byington

Harvard University

 

 

Part I. Early Korea Studies in the West – Dismal Prospects

 

This series of articles offers a retrospective account and assessment of the Early Korea Project (한국고대사연구실), a program that I designed and established in 2006 at the Korea Institute of Harvard University for the purpose of developing the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in the English language. My motivations for creating such a program included the general need to build a foundation for Early Korea Studies in the English language as well as a personal desire to remain in the field in which I had been academically trained. From 1994 to 2003 I engaged in graduate study at Harvard University with a research focus on the early history and archaeology of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ern China, particularly with regard to the polities of Puyŏ, Koguryŏ, and Parhae.

 

When I completed the PhD program in 2003, I was frustrated with what seemed to be the impossible task of finding a university department interested in hiring a specialist of early Korea, particularly a department that would enable me to continue my research interests and to develop that field. The central problem was that there was no developed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and academic programs that teach East Asian Studies still typically treat Korea as secondary in importance to China and Japan. My prospects in 2003 were not at all good, and this eventually led me to design and establish a program to address what I saw as the core problems preventing the development of Early Korea Studies.

 

Prior to 2006 one could not speak of Early Korea Studies as a field in English-language scholarship. Korean Studies (한국학) had begun to develop gradually as an academic discipline in the US after the Second World War, but it remained a very small field, and its historical focus fixed on the twentieth century and on the preceding Chosŏn kingdom. The ancient and medieval periods of Korean history never germinated as fields of study in English. There are various reasons for this, but the primary factors included the small number of scholars in the field, none of whom focused on ancient history, and the poor prospects of any scholar securing a faculty position on the basis of a focus on ancient Korea. The study of China and Japan had a considerable head start over the study of Korea in English scholarship, and the fields focused on the ancient history of Korea’s neighbors had likewise already developed in western academia.

 

Publications on early Korea prior to 2000 amounted to cursory treatments in several books on general history, a few monographs and articles focused on specialized subjects concerning early Korea, several articles written by Japanese scholars prior to 1945 and translated into English, and a small number of articles on a variety of focused topics, some by Korean scholars and others by western scholars. There was, however, no coherent foundation for Early Korea Studies sufficiently stable to enable and facilitate the study of early Korea by either students or established scholars. The problem was, again, a lack of specialists teaching in this field and the unlikelihood of a graduate with an early Korea focus securing an academic position.

 

There were additional hindrances to the development of Early Korea Studies arising from the particularities of academic institutions in North America during the early 2000s. The first was a general swing in course offerings away from those treating premodern periods and instead focusing on the modern era. With the exception of courses covering the Chosŏn period of Korean history, the only treatment of early or medieval Korea was to be found in general surveys, and such treatment was typically minimal. A second more serious problem has to do with the expectations placed on tenure track faculty members. In the unlikely event that an Early Korea specialist should secure a faculty position, he or she would be so burdened with teaching and committee duties that little or no time would remain for engaging in research or developing the field. Instead, the faculty member would need to focus on filling classrooms (by teaching popular subjects) and earning high teaching evaluations, participating in committees and otherwise shouldering part of the administrative burden expected in the department, and working to publish one or more monographs that receive positive peer review. All of this is essential to secure tenure. Once tenure is gained, there would remain teaching and other departmental duties, often including serving as chair, that would prevent or greatly hinder a meaningful development of a field that lacks its most basic foundation.

 

Despite these poor prospects, there was undeniably great interest in early Korea among students studying East Asia and among many scholars whose research would benefit from a knowledge of Korea’s early historic periods. Further, the international dispute over Koguryŏ history that erupted late in 2003 demonstrated a broader practical need to understand the early history of northeast Asia, which occasionally impinges on current events that can have lasting political effects. This dispute prompted the convening of an event called the Harvard Conference on Koguryŏ History and Archeology, which I organized and directed in April 2005. This conference featured eighteen presentations on various aspects of Koguryŏ history and archaeology by specialists from six countries (South Korea, Japan, China, Australia, France, and the United States). This well-attended event, the first of its kind in North America, demonstrated a broad interest in early Korean history among western scholars. The Koguryŏ dispute also highlighted the unfortunate preponderance of misinformation regarding Koguryŏ, and early Korean history in general, that is available on Internet resources, including such popular media as Wikipedia (this continues to be a problem).

 

The lack of a foundation for Early Korea Studies in English had by 2006 come to be recognized as a serious and unnecessary deficiency in western academia. Research focused on the early histories of China and Japan had already seen many decades of development in the English language, and they have long been recognized as respected fields of study. The interest and resources for the development of Early Korea Studies as a field did exist in North America, but they lacked coherence and a foundation upon which an academic field could build. Further, the practical difficulties faced by a specialist in Early Korea Studies hoping to secure an academic position, along with the very small number of students willing to specialize in a field with such an uncertain future, combined to produce a very bleak future for Early Korea Studies in western academia.

 

This was the environment in which I found myself in 2005. Having completed a doctoral program at Harvard in 2003 with a focus on the early history and archaeology of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ern China, I was forced to confront an academic environment that offered very little hope of securing a faculty appointment on the basis of my work on early Korea. After four unsuccessful years in the academic job market, I decided that a completely different approach would be necessary if there was to be any hope at all for Early Korea Studies in western academia.



Part I

1.      고구려 역사와 고고학에 관한 하버드 회의- 2005 4

(Harvard Conference on Koguryo History and Archaeology - April 2005)

 

2.      집안에 있는 고구려 유적에서의 필자- 1990년대 초

(Dr. Mark Byington at Koguryo remains in Jian - early 1990s)

 

 
필진 : 관리자 | 등록일 : 2017-02-28 22:04:40 | 조회 :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