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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와 유라시아
실크로드 연구 새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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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학술동향] 실크로드를 향한 수(隋) 양제(煬帝)의 야망 (2부) | 연구소


[사진 1] 「隋大業11年(615)張壽墓誌銘」의 탁본
이 묘지는 1925년 낙양(洛陽)에서 출토되었고, 현재는 서안(西安) 비림박물관(碑林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장수(張壽)는 제3차 토욕혼 전쟁에서 모용복윤의 서쪽을 포위했던 인물이다. 그의 묘지에서는 3차례에 걸친 토욕혼 원정에 종군한 사실이 전한다(노란색 표시 부분).
(도판 출처: 陳長安 主編, 1991 『隋唐五代墓志匯編(第1冊: 洛陽卷)』 天津: 天津古籍出版社, 138쪽).

 

         실크로드를 향한 수(隋) 양제(煬帝)의 야망 (2부)

 

                                                                                                              이진선(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연구원)

 

대외 전쟁과 변군(邊郡) 설치

  실크로드를 향한 양제의 야망은 대외 정복 전쟁으로 폭발하였다. 그 첫 대상은 바로 토욕혼이었는데, 토욕혼은 수의 변경을 공격해 그 역량을 가늠하고, 사절단 파견을 빌미로 수의 국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갔다. 양제는 먼저 철륵(鐵勒)을 이용해 토욕혼을 공격하였다. 철륵은 대업 3년(607) 수의 변새(邊塞)를 공격해 돈황(敦煌)에서 출격한 수의 장군 풍자효(馮孝慈)를 이기기도 하였지만, 수가 서돌궐(西突厥)과 교섭에 나서자 철륵의 계폐가릉(契弊歌楞)은 수 왕조에 화의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기회로 양제는 철륵에게 토욕혼을 공격하라고 회유하고, 결국 철륵은 이를 받아들여 군대를 몰아 토욕혼을 대패시켰다. 이것이 제1차 토욕혼 전쟁이다.
  철륵의 공격에 서평(西平)으로 도주한 토욕혼 가한 모용복윤(慕容伏允)은 대업 4년(608) 수에 사신을 보내 항복을 요청하였는데, 수의 장군 우문술(宇文述) 등이 이르자 다시 서쪽으로 도주하였다. 우문술 등은 이 제2차 토욕혼 전쟁에서 토욕혼의 주요 거점이었던 만두성(曼頭城)과 적수성(赤水城)을 함락하고, 왕공(王公)·상서(尙書)·장군(將軍) 200인과 남녀 4천을 포로로 잡았다.
  제1, 2차 토욕혼 원정을 토대로 양제는 토욕혼 가한을 그 땅에서 몰아내 토욕혼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앞선 진 시황과 한 무제의 업적에 대한 양제의 흠모와 모방은 하서(河西) 순행과 변군(邊郡) 설치로 완성된다. 양제는 대업 5년(609) 3월부터 9월까지 약 7개월에 걸쳐 서쪽 하서회랑으로 순행하였다. 양제의 변경 순행은 대외적으로 수렵이나 군대 도열을 통한 무력 과시, 주변 정치 세력의 사절단 및 상인으로부터의 조공, 이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제전에 참가하게 하는 국력 과시, 대내적으로 순행 경로에 위치한 지역의 세금 감면 등의 요소를 포함한다. 이 일련의 순행 과정에서 양제는 수 중심의 세계질서 구축에 방해가 되는 토욕혼에 재차 군대를 파견하였다.
  우문술의 공격으로 도주한 모용복윤이 무리를 이끌고 복원천(覆袁川)에 자리를 잡자 양제는 모용복윤을 사로잡기 위해 사방으로 군대를 파견해 압박하였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모용복윤이 포위를 뚫고 도주하자 양제는 장군 장정화(張定和), 양묵(梁默), 이경(李瓊) 등을 수차례 파견해 그를 추격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이 전사함으로써 끝내 토욕혼 가한을 놓치고 말았다. 모용복윤이 당항(黨項)으로 피난하여 후일을 도모하면서 제3차 토욕혼 원정은 끝나고, 양제는 끝내 그를 사로잡을 수 없었다.
  하서 순행 과정에서 양제는 제3차 토욕혼 원정을 통해 토욕혼 가한 모용복윤을 그 땅에서 몰아내고 빈자리를 차지하였으며, 이후 양제는 그 땅에 서해군(西海郡)ㆍ하원군(河源郡)ㆍ선선군(鄯善郡)ㆍ차말군(且末郡) 네 개의 군현을 새롭게 설치하였다.

  서해(西海)ㆍ하원(河源)ㆍ선선(鄯善)ㆍ차말(且末) 등의 군(郡)을 설치하고, 유배 간 천하의 죄인(罪人)을 수졸(戍卒)로 삼아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 유권(劉權)에게 명하여 하원군(河源郡)의 적석진(積石鎭)을 지키게 하고 크게 둔전(屯田)을 열어 토욕혼을 방어하면서 서역으로 가는 길을 통하게 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81, 대업 5년(609) 6월 조)

  토욕혼 옛 땅에 설치된 네 개의 군에는 각각 두 개의 속현이 설치되었다. 이 군현들의 존재는 당시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서 산발적으로 확인되는데, 613년 양현감(楊玄感)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망한 뒤 그와 평소에 교분이 있었다는 이유로 반휘(潘徽)가 서해군 소속 위정현주부(威定縣主簿)로 좌천되었고, 저량(褚亮)도 서해군사호(西海郡司戶)로 좌천된 일에서 군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차말군은 당시 수의 영토 가운데 가장 서쪽에 위치하였는데, 이 때문에 유배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출토 문서에서도 수대 서역에 설치된 변군의 존재가 확인된다. 돈황(敦煌) 출토 문서 「後晋天福十年(945)壽昌縣地境」에서 석성(石城)에 대한 설명에 “본래 한(漢)의 누란국(樓蘭國)이다. … 수에서 선성진(鄯城鎭)을 설치하였다. 수가 혼란해지자 그 땅이 곧 텅 비었다(本樓蘭國. … 隨置鄯善鎭. 隨亂, 其地乃空.)”라는 기록에서 선선군과 그 휘하의 선성진이 확인된다.
  이러한 변군 설치로 서평(西平) 임강성(臨羌城) 이서에서 차말(且末) 이동까지, 기련산(祈連山) 이남에서 설산(雪山) 이북까지 동서 4천리, 남북 2천리가 모두 수의 차지가 되면서 수 왕조의 번영이 극에 달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양제는 군대를 파견해 주둔시키고, 천하의 죄인들을 징발하여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지금의 합밀(哈密)에 위치한 이오(伊吾)는 서역 정세에 따라 고창국(高昌國), 철륵(鐵勒), 수(隋)로 귀부하였다. 608년 설세웅(薛世雄)의 이오 원정을 토대로 다음해(609) 6월 양제의 하서 순행 과정에서 이오의 토둔설(吐屯設)이 수천 리의 땅을 헌납하자 양제는 설세웅과 배구를 파견하여 610년 한대(漢代)의 이오둔성(伊吾屯城) 동쪽에 성을 축조하고서 이오군(伊吾郡)으로 삼았다. 이오성을 축조하자 서역제국(西域帝國)이 와서 그 연유를 따졌는데, 축조 담당자의 한 명이었던 배구는 번인(蕃人)이 교역하는 길이 멀어 이오에 성을 축조할 뿐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양제가 이오성 축조에 설세웅뿐 아니라 배구를 함께 파견한 것은 이오를 수의 새로운 동서교역의 요충지로 만들기 위한 안배도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2] S.0367 「唐光啟元年(885)沙州伊州地志藏卷」 문서
「唐光啟元年(885)沙州伊州地志藏卷」 문서에는 “隋 大業 6년(610) 성 동쪽에 땅을 사서 伊吾郡을 설치하였다(隋大業六年, 於城東買地置伊吾郡.)”라는 기록이 보인다.
(문서 원본: http://idp.bl.uk에서 367검색. 녹문 및 사진 출처: 王仲犖, 1993, 『敦煌石室地志殘卷考釋』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40쪽)

  양제는 서쪽 땅에 새롭게 설치한 군현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였다. 둔전의 개간은 하원군뿐 아니라 “옥문(玉門)과 유성(柳城) 밖에 둔전(屯田)이 흥성하였다”고 할 정도로 왕성하였다. 농서(隴西)와 하우(河右)는 넓은 땅에 비해 백성이 희박한 곳이었기 때문에 양제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죄수를 이 지역으로 사민시키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러한 사민과 주둔은 이 지역을 공고히 하겠다는 국가적 사업의 일환을 의미할 것이다.
  군현제를 토대로 변경을 방어하기 위한 비용은 해당 지역의 자체적인 둔전 개간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었고, 이 둔전 활용이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사방의 군현에서 양식을 운반해 공급하였으며, 심지어 관중(關中)의 부유한 자들에게는 자산에 따라 많게는 수 백 두(頭)에 이르는 나귀를 차출하여 이오군·하원군·차말군으로 가서 양식을 운반하게 하였다. 수천 리의 땅을 개척하였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해마다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었다. 후대 사람들은 소모되는 비용이 날로 증가하여 내지의 자원을 비워 변경에 공급하는 것을 무익하다고 비난하였지만, 양제는 중원 통일을 이룩한 황제로서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내지의 질서를 외지로 확장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실크로드에 대한 야망을 실현했던 것이다.

 
필진 : 관리자 | 등록일 : 2020-06-30 17:38:49 | 조회 :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