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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술동향] 《한춘묘지》와 그의 생애 행적에 대하여 | 연구소


[《한춘묘지(韓橁墓志)》 덮개석]

                     《한춘묘지(韓橁墓志)》와 그의 생애 행적에 대하여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차오양(朝阳)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춘묘지(韓橁墓志)》는 높이 157cm 넒이 148cm의 방형 형태의 묘지석으로 1916년 차오양에서 10km 떨어진 차오양구(朝陽溝)에서 출토되었다. 묘지 덮개석 정중앙에는 해서체로 “한공묘지명(韓公墓志銘)”이란 글자가 세로로 쓰여 있으며 묘지석 둘레에는 전지화문(纏枝花紋)이 새겨져 있다.
 
  이 묘지석에는 45행에 각 행 당 59자로 총 2420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요대(遼代) 한지고(韓知古) 일가의 역사를 비롯하여 및 요(遼)나라 관직과 지리 및 역사적 사건을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한춘묘지(韓橁墓志)》]

  묘지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춘(韓橁, ?~1036)의 생전 행적을 살피면, 그는 요나라에서 재정·관리·군사 등 여러 방면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던 인물이다. 재정과 관련하여서는 고사(庫使) 둔전사(屯田使)를, 군사와 관련하여서는 좌제일효기부서(左第一驍騎部署) 연경유수아내마보군도지휘사(燕京留守衙内馬步軍都指揮使)·역주병마도감(易州兵馬都監) 시위친군보군도지휘사(侍衛親軍步軍都指揮使) 병마영할(兵馬鈐轄)을, 궁의 호위와 관련하여서는 홍의궁도부서(弘義宮都部署) 장민궁도부서(彰愍宫都部署) 등의 관직을 두루 맡았다. 또 그는 현재의 랴오닝성을 관할하는 직책도 맡았으며, 이밖에도 요(遼) 성종(聖宗) 8년(1028)에 일어난 대연림(大延琳)의 반란을 토벌한 공로가 있음을 전하고 있다.

  특히 그는 요나라 관료로서 외국으로 사신으로 가장 많이 파견되었던 인물이었다. 한춘이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된 횟수는 총 5차례인데, 이 중 북송(北宋)에 2번 서하(西夏), 사주(沙州), 고려(高麗)에 각각 1번씩 파견되었다. 그중에서도 개태(開泰) 8년(1019)에 한춘이 사주회홀(沙州回鹘)에 사신으로 가 그 수령을 둔황군왕(敦煌郡王)에 책봉하고 사주의 특산품을 가지고 귀국하였다는 대목은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원(文物考古研究院)의 리위펑(李宇峰) 연구원에 따르면 사주는 현재 간쑤성(甘肅省) 둔황시(敦煌市) 서쪽에 있었으며 요나라 60개의 속국 중 하나였다고 한다. 요나라 사적에 사주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다는 점은 감안할 때, 본 묘지명은 사주와 요나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자세한 소식은 아래의 중국 측 보도를 참조.
www.cssn.cn/gd/gd_rwdb/gd_dfwh_1714/202004/t20200428_5119829.shtml?COLLCC=1547540397&COLLCC=730555733&

 

 
필진 : 관리자 | 등록일 : 2020-05-04 23:23:57 | 조회 :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