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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P(Early Korea Project)

하버드 한국 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회고 10 | 연구소


                     하버드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회고

 

 

                                                                                              마크 바잉턴 교수(Dr. Mark E. Byington)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제 10부. 중단과 그 영향

 

지난 섹션에서 한국으로부터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한국고대사연구실(Early Korea Project, EKP)이 조기에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번 마지막 섹션에서는 그 문제를 좀 더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2014년 초 한국고대사연구실은 주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동북아역사재단(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과 다년간의 지원금을 갱신하기 위한 협상 중에 있었다. 하지만 그 해 3월부터 아래의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협상 과정이 중단되었다.

 

한국의 과거에 대해 초국수주의적이고 사이비 역사학적 관점을 지닌 많은 사람들은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이후 내용에서는 “사이비 역사 단체”라고 언급하겠다)라는 단체를 결성하였고, 그 중 일부는 수년 동안 동북아역사재단을 공격해왔다. 2014년 3월 19일에 이들은 국회에서 모임을 가졌고, 한국고대사연구실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동북아역사재단을 공격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한국고대사연구실의 출판물 중 두 권– 2014년에 출판된 “한국고대사에서 한사군”과 삼한 시대에 초점을 맞춘 Early Korea 2집–이 “식민사관”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식민사관”이 명확하게 정의된 적은 없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식민사관은 일제가 한국 역사를 폄하하고, 한국 역사를 퇴보하는 역사이자 영원히 강대국에 종속된 역사로 보이게끔 만들고자 구축한 역사관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 사이비 역사 옹호자들이 활용하는 것처럼, 식민사관이라는 용어는 전적으로 임의적으로 사용된 것처럼 보이며, 공격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모든 관점을 모든 관점을 “식민사관”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관점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치부하였다.

 

여기에서 가장 위태롭고 중요한 사안은 낙랑군이 오늘날의 평양에 위치했다는 확립된 학계의 주장인 듯 한데, 사이비 역사 옹호자들은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학계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낙랑군이 한반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했다는 견해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이 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사이비 역사 옹호자들이 이 의견을 “식민사관”과 관련시켜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이 의견은 타당한 근거에 의해 조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확립된 견해였다.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찬과 유명한 사이비 역사 저자 이덕일 외 다른 사람들이 이끄는 이 사이비 역사 단체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 동북공정의 사명을 촉진하고, 소위 일제의 “식민사관”에 동조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재단에 대한 공공 감사를 계속 요구했다. 이 움직임은 국회에서 큰 지지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대표적인 (전) 새누리당의 김세연 의원, 정문헌 의원, 이상일 의원을 포함하여 모든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공공 감사 요청이 승인되었고,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지원은 이때 중단되었다. 감사조사위원회(Board of Audit and Investigation, BAI)가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추진했고, 이 감사는 2014년 후반기에 진행되었다. 감사 결과, 기록 작성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사소한 과실이 몇 가지 발견되었지만, 한국고대사연구실 출판물의 내용은 감사조사위원회의 감사 범위 밖의 학문적 사안이라고 판단되었는데, 이 결론이 사이비 역사 단체를 격분하게 만든 것 같았다.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고대사연구실이 한국 주변국들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촉진시켰다는 증거가 나오기를 바랬지만, 감사 결과 그와 같은 증거는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비 역사 단체의 비난은 정계, 여론 및 매체에서 여전히 큰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한국의 공적 지원이 무기한으로 중단되었고, 이 성공에 고무된 사이비 역사 단체는 한국고대사연구실과 한국고대사연구실이 이룬 모든 성과를 계속 비방했다. 특히 이덕일은 한국고대사연구실과 한국의 주류 학계에 대한 공격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덕일과 다른 사이비 역사 옹호자들이 하는 주장은 보통 주류 의견을 뒷받침하는데 사용되는 수많은 자료 중에서 예외적인 이상치에 해당하는 자료들만을 골라내는 방식을 취했다. 이들 사이비 역사 옹호자들, 특히 이덕일은 그들 논쟁의 근거를 합리적인 주장과 공인된 학문적인 방식 대신에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에 두고 있다. 이들은 즉각적으로 암시, 욕 및 인신공격에 기대고, 자신들의 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와전(訛傳)이라는 전술을 선호한다.

 

한국사에서 한사군을 다룬 우리의 책에서는, 고조선인과 고조선 사회가 한사군 지배 하에서도 계속 존재하고 발전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사군의 성격에 관한 기존의 학술적 관점에 깊이를 더하고자 했다. 이 시기의 역사는 여전히 “한국사”에 해당하며, 한국사로 인식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마치 20세기 전반 한국의 역사가 일제 식민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사로 인정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이비 역사 옹호자들은 한국고대사연구실이 일제 식민지 학자들의 의견을 그대로 베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우리 책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반박할 수 있다. 문제는 사이비 역사 단체가 이 책의 실제 내용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자신들의 안건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우리의 책을 단순히 왜곡시키기만 했고 이들의 노력은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국회는 이들의 의견을 수용했고, 이덕일은 심지어 동북아역사왜곡대책 특별위원회라는 국회 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까지 했다. 이 특별 위원회는 한국고대사에 대한 관점과 관련하여 인정받는 학자들을 종종 굴욕적인 방식으로 심문했다.

 

한국고대사연구실의 출판물들(그리고 한국고대사연구실의 성격)에 대한 이들의 비난은 대부분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하거나 명백한 거짓이었으나, 주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잘못된 정보에 반박하거나 한국고대사연구실을 변호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없었다. 나에게 정보를 요청하는 주류 역사학자는 없었으며, 당시 한국의 대중 매체 역시 이들 사건에 대한 필자의 견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주류 역사학자들의 침묵은 2016년 봄까지 이어졌다. 2016년 봄이 되어서야 일부 주류 역사학자들이 사이비 역사 경향에 반박하기 시작했는데, 오늘날 사이비 역사 경향은 학문의 자유와 해외에서의 한국의 신뢰도에 분명히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 학자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파괴적인 경향에 대응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조치들이 한국고대사연구실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한국고대사연구실은 하버드가 제공하는 지원을 통해 축소된 규모로 활동을 이어갔는데, 이 지원을 통해 고구려에 관한 비정기 시리즈(Occasional Series)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대 한국-일본 교류에 관한 마지막 출판물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남아있는 지원금도 2017년 1월 31일로 소진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사실상 한국고대사연구실은 본질적으로 죽은 프로그램이 되었다.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전적으로 위에서 설명한 사이비 역사 단체의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고, 사이비 역사 단체가 거둔 성공이 한국에 유익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서구 학자들이 이미 주류 의견(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했다)과 더불어 비주류 의견의 사이비 역사적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고대사연구실의 중단은 한국 내 한사군(漢四郡) 문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사실 한국고대사연구실의 중단과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특정 집단이 한국고대사에서 “중국”의 개입에 아주 민감하다는 사실만 서구 학자들에게 부각시켰다). 만약 한국고대사연구실의 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 시기 역시 한국사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에 대한 깊이를 더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한국고대사연구실을 중단시킨 동기라면, 이는 무의미하고, 역효과를 내며, 근시안적이고, 잘못된 판단과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사이비 역사 옹호자들이 항상 존재해왔고, 학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사이비 역사 옹호자들을 무해하며, 참아야 하는 골칫거리로 여겨왔다. 하지만 사이비 역사 옹호자들의 의견이 정부의 지지를 받으면 그들은 실로 위험해진다. 학문의 자유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바로 그대로 인식되어 한국의 국제적 신용도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 한국 정부가 상식은 물론 주류 학계와 분명히 반대되는 “위대한 고대사”의 관점을 지지할 경우, 학문적 우수성과 학문의 자유를 지지하는 대한민국으로서의 명성을 잃게 될 것이다. 그 피해는 이미 상당히 가시화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고대사연구실은 전 세계 학자들로부터 존중과 신뢰를 얻기 위해 국수주의적이거나 정치적인 영향력을 피하면서 균형 잡힌 학문을 도모하고자 노력했다. 많은 일들이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우리는 우리의 프로그램이 고조선, 백제, 형성기 신라, 발해, 가야는 물론 수많은 관련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어 계속해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우리가 구축하고자 한 토대가 아직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취해낸 것은 서구에서 한국고대사 분야로 새로운 학자들이 입문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이들 학자들이 영어로 된 한국고대사 분야의 토대를 구축하는 작업을 이어가길 바란다. 하지만 이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를 위한 한국의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고대사연구실이 정치적 근시안이나 사이비 역사학의 불합리성의 부식 작용으로도 파괴되지 않을 씨를 심는데 성공했기를 희망한다.

 

       A Retrospective Account of the Early Korea Project at Harvard

 

                                                                                                                     Mark E. Byington

                                                                                                                     Harvard University

 

 

Part X. Termination and Its Implications

 

In the previous sections I have made reference to the early termination of the Early Korea Project due to the cutting of support from Korea, and in this final section I will briefly discuss this matter in more detail. In early 2014 negotiations were underway with the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to renew the multi-year grant for the Early Korea Project with the expectation that we would be able to continue our work to meet our mission goals. This process came to a halt, however, following events that unfolded from March of that year.

 

A number of advocates of an ultra-nationalistic and pseudohistoric view of the Korean past, some of whom had been attacking the Northeast Asian Foundation for years, formed an organization called the “People’s Movement to Eradicate Colonialist History”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 본부; hereafter referred to as the “pseudohistory group”). On 19 March 2014 they held a meeting at the offices of the National Assembly and attacked the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for its support of the Early Korea Project. Specifically, they charged that two of our publications—the 2014 volume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 and the second volume of Early Korea, which focused on the Samhan Period—represented a “colonial view of history” (식민사관). Although this “colonial view” is never clearly defined, it seems to indicate a view purportedly created by imperial Japan in an effort to denigrate Korean history, making it appear to be backward and forever subject to greater powers. As utilized by these pseudohistory advocates, however, the term seems to be entirely arbitrary, and any views to which the attackers take exception are claimed to represent either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or the Chinese Northeast Project.

 

The overriding issue at stake seems to be the well-established academic claim that the Chinese commandery of Lelang was located in what is today Pyongyang, and the peddlers of pseudohistory generally take great exception to this view and claim that the commanderies were instead located far outside of the Korean peninsula. It is well known among academics, however, that the view of Lelang as located at Pyongyang far predates the Northeast Project and the Japanese colonization of Korea—this was a well-established view shared broadly, and for good reason, among scholars throughout East Asia, including Chosŏn Korea, during the premodern period, despite the pseudohistorical claims that associate that view with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This pseudohistory group, led by former director of the NIS Yi Chong-ch’an, and popular pseudohistory author Yi Tŏg-il, with others, pressed for a public audit of the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charging that organization with furthering the mission of the Chinese Northeast Project and conforming to the so-called “colonial view of history” of imperial Japan. This move appears to have found great support within the National Assembly, with statesmen from all political parties actively pressing the case, most prominently including Kim Se-yŏn, Chŏng Mun-hŏn, and Yi Sang-il, all of the (former) Saenuri Party. The request for audit was approved, and support for the Early Korea Project was suspended at this time. The Board of Audit and Investigation (BAI) proceeded with a thorough audit of the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which took place over the latter part of 2014. Although the audit uncovered some relatively minor lapses in record-keeping, the content of Early Korea Project publications was determined to be an academic matter lying beyond the scope of the mission of the BAI, a conclusion which seems to have infuriated the pseudohistory group.

 

Although the audit failed to turn up the hoped-for proof that the Foundation and the Early Korea Project were willingly furthering the interests of Korea’s neighbors, the charges made by the pseudohistory group continued to enjoy great support in both the political and popular realms and in the media as well. As a result, Korean public support for the Early Korea Project was terminated indefinitely, and the pseudohistory group, encouraged by their success, continued to malign the Early Korea Project and all that it has accomplished. Yi Tŏg-il in particular has been very active in launching attacks on the Early Korea Project and on the mainstream scholarly community in Korea. The arguments posed by Yi and others typically amount to a cherry-picking of data that represent exceptional outliers among an abundance of data that are used to support mainstream views. These fringe groups, especially Yi Tŏg-il, base their arguments on an appeal to emotion rather than rational arguments and accepted scholarly methods. They resort immediately to insinuation, name-calling and ad hominem attacks, and they favor a tactic of misrepresentation to facilitate their attacks.

 

In our book on the Han commanderies in Korean history, we sought to add depth to previous scholarly views of the nature of the commanderies, pointing out that the people and society of the state of Chosŏn continued to exist and develop under commandery governance. The history of this period is still very much “Korean history” and should be viewed that way, just as the history of the first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is considered to be Korean history despite the Japanese colonization. The pseudohistory advocates, however, charged that the Early Korea Project simply copied the views of the colonial Japanese scholars intact, which is easily disproved by a summary scan of the text of the book. The actual contents of the book, however, do not seem to have been of much concern to the pseudohistory group, who were simply misrepresenting the book in such a way as to further their own agenda, in which effort they were completely successful. The National Assembly appears to have been won over by these views, and Yi Tŏg-il even came to participate in meetings of a subcommittee of the National Assembly called the Special Committee for Response to Distortions of Northeast Asian History (동북아역사왜곡대책 특별위원회), which often subjected established scholars to humiliating inquisitions regarding their views of Korea’s early history.

 

Although most of the charges leveled against our publications (and against the nature of the Early Korea Project) were misinformed or outright false, there appears to have been little effort on the part of mainstream historians to counter this misinformation or to defend the Early Korea Project. I was myself never asked to provide any information, nor was the popular media in Korea at this time receptive to considering my perspective of these events. The silence of the mainstream historians continued until Spring of 2016, when some began to speak out against the pseudohistory trends, which clearly now represent a danger to academic freedom and to Korea’s credibility abroad. At present there seems to be a willingness among Korean scholars to counter these destructive trends, but such actions come far too late to save the Early Korea Project from its fate.

 

We were able to continue on a reduced level through support from Harvard resources, which allowed us to complete the Occasional Series volume on Koguryŏ (soon to be joined by the final volume on Early Korea-Japan Interchanges). The remaining funding from the Korea Foundation ended on January 31, 2017, and since that time the Early Korea Project has been essentially dead.

 

The decision to terminate the support for the Early Korea Project seems to have been based entirely upon misinformation produced by the pseudohistory group described above, and it would be difficult to describe the effects of their success as being beneficial to Korea. The matter of the commanderies in Korea is unaffected by the termination of the Early Korea Project, since western scholars were already well aware of both the mainstream view (that Lelang was located in Pyongyang) and the pseudohistorical nature of the fringe view. (In fact, the termination and the reasons for it have highlighted to western scholars the fact that certain segments of Korean society are particularly sensitive to the notion of “Chinese” involvement in early Korean history.) Had our book failed to appear, what would be missing is the element of depth that shows this period to be very much part of Korean history. If this was the motivation for terminating the Early Korea Project, which seems to be the case, that act was pointless, counterproductive, shortsighted, misguided, and misinformed.

 

It is true that there have always been popular pseudohistorical proponents in Korea, as in other countries, and for the most part they tend to be harmless and have been regarded by scholars as nuisances that have to be endured. But when such views receive the support of government, they become dangerous indeed. Not only is academic freedom threatened, such acts will be immediately recognized abroad for what they are, and Korea’s international credibility will be badly damaged. If the Korean government pushes a view of “a grand ancient history” that clearly contradicts mainstream scholarship as well as common sense, Korea’s reputation as a supporter of scholarly excellence and academic freedom will be lost. The damage already done appears to be considerable.

 

The Early Korea Project sought to promote balanced scholarship, avoiding nationalistic or political influence, in order to ensure respect and credibility among scholars worldwide. Much work is left undone. We had expected to continue our programs with a focus on topics such as Old Chosŏn, Paekche, formative Silla, Parhae, Kaya, as well as studies of a number of related themes. Although the foundation we had expected to build is left incomplete, what we have accomplished has gone a long way toward facilitating the entry of new scholars into the field of Early Korea Studies in the West, and it is hoped that they will be able to continue to construct that foundation. This will not be an easy task, however, as it seems necessary to proceed without support from Korea. But I hope that the Early Korea Project was successful in planting a seed that will not be destroyed by political shortsightedness or by the corrosive effect of pseudohistorical irrationality.

 

Part X

1. 한국고대사에 있어서의 한사군(漢四郡) (Cover of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

 

2. 2017년 5월 한국고대사연구실 사무실 폐쇄 (EKP office closed in May 2017)

 
필진 : 관리자 | 등록일 : 2017-08-14 10:53:26 | 조회 :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