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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계의 한국 고대사 史料 연구 현황 | 연구소


                  일본 학계의 한국 고대사 史料 연구 현황

 

                                                                                                                   우에다 기헤이나리치카

 

1. 동양사와 일본사 영역에서의 한국 고대사 연구

일본 학계에서 한국사 연구 자체는 주로 동양사 영역, 혹은 일본사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적으로 한국사를 전공할 수 있는 대학·대학원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사를 전공하려 한다면 동양사학과에 진학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한국 학계의 한국사 연구와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동양사 영역에서 한국사는 한국에 대한 내용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본래 일본에서 동양사는 중국사, 한국사, 몽골사, 동남아시아사, 인도사, 이슬람사 등 상당히 넓은 범위를 다루는 학문 분야이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한국사를 전공하는 사람은 한국사를 공부하는 동시에 중국사를 공부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 고대사를 공부하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된다. 주지하듯이 한국 고대사는 史料가 매우 적다. 실제로 한국에서 전해지는 고대사 사료 중에는 『三國史記』, 『三國遺事』 이외에 체계적인 것이 거의 없다. 한편 고대 한국과 관련된 기록은 중국 史料에 남아 있는 바가 많다. 이를 고려할 때 한국 고대사 연구는 중국 사료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불가결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근년에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중요한 사료로 중국에서 출토된 백제, 고구려 유민의 墓誌銘과 한반도에서 출토된 신라, 백제 목간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묘지명의 경우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사료라는 점에서 중국 사료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 성격과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한편 목간의 경우 한반도에서 요즘 많이 출토되었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일본에서 출토 된 수량과 비교할 때 그 개체수는 적은 편이다. 그러므로 한국 출토 목간을 분석할 때에는 이미 발견된 중국과 일본의 목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일본 목간과의 비교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일본 목간과 한국 목간 사이의 유사성이 지적된 바도 있다. 그래서 일본 고대의 목간이 신라나 백제의 목간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일본사 영역에서 한국 고대사를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 대외 관계사 분야의 한 부분으로 한일 관계사를 연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백제인들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른바 渡來人으로 활약하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고대 일본과 백제의 인적 교류의 일면을 보여준다. 또 신라, 발해의 경우도 외교 사신 왕래했기 때문에 외교사 측면에서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관련 사료로는 國書와 같은 외교문서나 사신 왕래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日本書紀』 등 六國史, 백제와 일본 사이의 교류를 보여주는 七支刀, 신라와 일본의 교류 흔적 및 신라 호적제도의 존재를 시사하는 正倉院 新羅村落文書 등이 일본에 전해져 오고 있다. 일본 고대사 학계에서는 이러한 일본 사료를 활용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려면 다양한 史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 학계의 경우 동양사, 일본사 모두 사료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본고에서는 일본 학계에서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史料 연구의 현황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2. 연구 동향 검색 방법

아마도 한국인 연구자들이 ‘일본의 한국사 연구 동향’을 알아보려고 할 때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온라인 검색 기능의 부족 문제일 것이다. 일본 학술 정보를 검색할 때에는 주로 CiNii(http://ci.nii.ac.jp/)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사에 전문화된 검색 시스템도 존재한다. 일본의 한국사 학회 중 하나인 朝鮮史研究會가 제공하는 검색시스템도 그 중 하나인데, 「전후 일본에서의 조선사 문헌 목록(데이터베이스 판)」(戦後日本における朝鮮史文獻目録 データベース版 ; http://www.zinbun.kyoto-u.ac.jp/~mizna/sengo/)이 바로 그것이다. 그 내용은 매년 갱신되어 CiNii에서 찾을 수 없는 글들이 검색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조선사연구회가 편찬한 『朝鮮史研究入門』(일본, 名古屋大學出版會, 2011) 역시 많은 도움이 된다. 조선사연구회는 과거에도 『朝鮮史入門』(太平出版社, 1966), 『新朝鮮史入門』(龍溪書舎, 1981)을 간행했었는데, 기왕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정리하였다. 일본에서 발표된 한국사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려면 위의 세 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朝鮮史研究入門』의 경우 근래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사연구입문』(일본 조선사연구회 편, 박대재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16)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일본 독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일본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한국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 한국학계의 연구사를 같이 살필 때 많은 도움이 된다.

다음으로는 위에서 소개한 검색 시스템을 통하여 구한 일본 학계의 연구 성과를 지난 10년 동안 발표된 글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3. 사료에 대한 연구 성과

 

(1) 금석문

① 중국 출토 묘지명

근래 한국 고대사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료로는 중국 출토 백제, 고구려 유민 묘지명이 있는데, 지금도 많은 자료집과 논문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묘지명 연구는 해당 사료가 중국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중국 학계의 글들이 많은 편이지만, 일본에서도 묘지명에 대한 연구는 진행된 바 있어 참고할 연구 성과가 있기도 하다. 유민 관련 논문을 위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학계의 연구 성과 중에는 백제 유민 禰軍 묘지명에서 나타나는 ‘日本’이라는 표현에 관련된 것이 가장 많다.(葛継勇, 2012 ; 荊木美行, 2012 ; 西本昌弘, 2013 ; 井上亘, 2014.) 다만 이들 논문은 유민에 대한 문제 보다는 대개 일본 고대사의 측면에서 일본 국호의 성립 시기 문제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東野治之는 중국 문헌 및 다른 문헌 사료의 사례를 살펴 본 결과 예군 묘지명에 나온 ‘日本’이 일본을 지칭하는 국호로 보기 힘들다고 주장하였다.(東野治之, 2012) 이외에 고대동아시아사세미나(古代東アジア史ゼミナール)는 예군 묘지명을 비롯한 예씨 일족의 묘지명들을 역주한 것으로(古代東アジア史ゼミナール, 2012・2013・2015.) 특히 중국 고전의 용례를 참조하면서 묘지명의 내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려고 시도했다.

재차 강조하는 바이지만 이처럼 중국 사료이기도 한 유민 묘지명을 분석할 때에는 중국 사료에 대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국사 입장에서 백제 유민을 분석한 金子修一의 글은 당 제도 아래에서 유민의 처우를 이해할 때 시사하는 바 크다.(金子修一, 2013). 또한 植田喜兵成智는 중국 지배 하에 있던 돌궐 유민, 소그드인 등의 연구 성과를 참조하면서, 당 체제 하에서 백제 유민이 군사 활동에 종사 한 사실을 분석한 바 있다.(植田喜兵成智, 2015) 이처럼 유민의 實態를 밝히려고 할 때에는 중국 사료 및 중국에 있는 다른 외래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 개별 사료에 대한 연구로는 葛繼勇, 李成市, 鈴木靖民 등의 글들이 있어(葛継勇, 2014a・2014b・2015 ; 李成市, 2015; 鈴木靖民, 2016) 예군 묘지명, 물부순 공덕기, 진법자 묘지명 등을 살필 때 참고 된다. 그리고 한국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지만 근래 소그드인 묘지명에 대한 자세한 역주가 이루어진 바 있어,(石見清裕 編著, 『ソグド人墓誌研究』, 汲古書院, 2016) 앞으로 유민 묘지명을 이해하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될 것이다.

 

 

② 고대 삼국과 관련된 금석문

일본 학계에서는 중국에서 출토 된 묘지명 연구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출토 된 비문 등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먼저 武田幸男의 신라 울진봉평비에 대한 연구가 있다. 그는 봉평비를 신라 지배 계층 집단이 선행 敎事를 근거로 居伐牟羅 男彌只村에 奴人法을 시행하게 한 교사비라고 규정했다.(武田幸男, 2003・2004) 濱田耕策는 이미 발표했던 廣開土王碑, 칠지도, 유인원기공비, 신라 鐘銘文에 대한 연구를 묶어 『朝鮮古代史料研究』(吉川弘文館, 2013)로 간행하였다. 사료 연구를 중심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木村誠도 신라촌락문서, 중원고구려비, 칠지도와 관련된 글들을 묶어 『古代朝鮮の国家と社會」(吉川弘文館, 2004)로 간행하였다. 여기에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발표된 성과를 담고 있는데, 기왕의 견해를 수정하거나 보충한 바도 있어 저자의 최신 견해를 알 수 있다.

한편 碩學들의 글뿐만 아니라 차세대 연구자들의 글들도 발표되고 있다. 井上直樹는 고구려에 포로가 됐던 隋人 韓曁의 묘지명을 통해 고구려의 대 북위 외교를 파악하기도 했고,(井上直樹, 2001) 중국 集安에서 발견된 문자자료를 통해 고구려의 관호 및 지배 체제에 대한 연구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井上直樹, 2007) 篠原啓方는 고구려 안악 3호분을 분석하여 그 묘지명의 주인공을 冬壽라고 판단하였다.(篠原啓方, 2009) 또 신라 남산신성비에 대한 연구도 이루고 있는데, 새로운 판독문과 해석이 제시되기도 했다.(篠原啓方, 2013・2014a・2014b) 신라 비문에 대한 연구로서는 橋本繁의 글들이 주목되는데,(橋本繁, 2011・2013・2015) 浦項中城里新羅碑나 戊戌塢作碑과 같은 신라 築城碑에 대한 연구성과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는 비문 판독에 있어 매우 신중하며 견실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2) 목간

지난 20년 동안 일본 학계의 한국 목간 연구는 李成市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 성과는 『韓國出土木簡の世界』(早稲田大學朝鮮文化研究所 편, 雄山閣, 2007), 『東アジア古代出土文字資料の研究』(工藤元男・李成市 편, 雄山閣, 2009), 『咸安城山山城木簡』(早稲田大學朝鮮文化研究所 편, 雄山閣, 2009) 등에 수록되었다. 종래 일본 학계는 일본 목간의 전래과정을 주로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파악하였는데, 李成市는 중국으로부터 온 목간 시스템이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변화된 그 체계가 이후 백제나 신라를 통해 일본에 전해졌을 것이라 지적하였다.(李成市, 2002)

橋本繁는 일본에서 최초로 한국 목간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학위논문은 『韓國古代木簡の研究』(吉川弘文館, 2014)로 간행되었다. 여기에는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 한반도 출토 『論語』 목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달리 일본 고대사 입장에서 이루어진 한국 목간 연구도 있다. 市大樹는 경주 해자 목간, 이성산성 목간 등 신라 문서 목간의 형식이 일본 고대 목간인 ‘前白木簡’과 같다고 지적하였고,(市大樹, 2008.) 三上喜孝는 부여 쌍북리에서 출토된 백제 목간과 일본 出擧 목간의 형식 및 용어가 일치하다고 지적하였다.(三上喜孝, 2009) 이외에 나주 복암리 출토 백제 목간이 일본의 지방 목간이나 平城京 출토 목간과 유사하다고 지적한 연구도 있다.(渡辺晃宏, 2010 ; 李成市, 2012 ; 馬場基, 2012.)

이렇게 볼 때 한국 목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비교사적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비교사적 시각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목간 시스템의 기원인 중국 목간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목간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간을 동아시아 시각에서 파악하려고 시도한 성과로는 『東アジア木簡學のために』(角谷常子 편, 汲古書院, 2014.)가 있는데, 일본의 중국사, 일본사, 한국사 연구자가 각기 중국 簡牘, 한국 『論語』 목간, 일본 荷札木簡, 歌木簡에 대해 나름대로 견해를 제기하였다.

 

(3) 광개토왕비

광개토왕비에 대해서는 지금 일본에서 좀 색다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광개토왕비는 일본, 한국, 중국 등에 그 탁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 탁본의 성격에 대한 연구가 근래 武田幸男에 의해 이루어졌다. 일찍이 武田幸男는 광개토왕비 탁본을 제작 연대에 따라 原石 탁본과 뒤에 만들어진 石灰 탁본 등으로 분류하여 파악한 바 있다.(武田幸男, 2004) 각각의 탁본을 분석하여 그 연대를 규정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 『廣開土王碑墨本の研究』(武田幸男 著, 吉川弘文館, 2009)로 출판되었다.

山近久美子 등은 근대 일본에 광개토왕비를 소개한 酒匂景信와 관련된 미국 국회 도서관 소장 자료를 분석하여 酒匂景信가 동부 만주를 1883년도 조사했다고 추측하였다.(山近久美子・渡辺理絵・小林茂, 2011) 이는 광개토왕비 탁본이 일본에 들어온 시점을 밝히는 데 있어 시사하는 바 크다.

일본 오차노미즈대학(お茶の水大學)에는 한 광개토왕비 탁본이 소장되어 있다. 광개토왕비 발견 130년을 기념으로 그 탁본에 대한 분석 및 광개토왕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그 성과는 『廣開土王碑拓本の新研究』(古瀬奈津子 編, 同成社, 2013)으로 간행되었다. 특히 奥田環는 오차노미즈대학에 존재하는 광개토왕비 탁본이 사범 교육을 위한 역사 교재로서 당시의 사범학교 당국에 의해 1939년 중국에서 구입되었음을 추정하였다.(奥田環, 2013) 사실 광개토왕비 탁본은 일본 곳곳에 수장되어 있는데, 고등학교에 소장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는 근대 일본에서 광개토왕비가 어떻게 인식됐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4) 기왕의 傳世 文獻

① 『日本書紀』 등에 실린 외교문서

마지막으로 『三國遺事』, 『日本書紀』 등 전세 문헌에 대한 연구를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최근 나온 성과로서 『譯註 日本古代の外交文書』(鈴木靖民・金子修一・石見淸裕・浜田久美子 편, 八木書店, 2014)를 놓칠 수 없다. 이는 『日本書紀』를 비롯한 六國史, 『類聚國史』 등에 실린 외교문서, 즉 국서 50점에 대한 번역과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사, 중국사, 한국사 연구자가 함께 이룬 성과로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이러한 일본의 전세 사료를 활용한 연구로서 廣瀬憲雄는 書儀를 비롯한 외교문서의 형식에 주목하여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東アジアの国際秩序と古代日本』, 吉川弘文館, 2011) 浜田久美子는 『大唐開元禮』, 『延喜式』 등을 활용하여 발해 사신이 일본에 왔을 당시의 외교 의례를 분석하였다.(『日本古代の外交儀礼と渤海』, 同成社, 2011) 또 근래 『日本古代交流史入門』(鈴木靖民・金子修一・田中史生・李成市 편, 勉誠出版, 2017)도 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 후백제 등과의 대외 관계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② 『三國遺事』와 문학 작품

『三國遺事』에 대해서는 일찍이 『三國遺事考証』(上・中卷; 三品彰英 遺撰, 塙書房, 1975・1979. 下卷1-3; 村上四男 撰, 塙書房, 1994-1995.)가 잘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일본 新羅史硏究會가 역주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新羅史硏究會1994-2001) 근래 『『三國遺事』の新たな地平』 (袴田光康・許敬震 編, 勉成出版, 2013)는 문학 연구자의 입장에서 『三國遺事』를 분석하였다. 또 『新羅殊異傳』(小峯和明・増尾伸一郎 편, 平凡社, 2011)은 『海東高僧傳』, 『太平通載』, 『大東韻府群玉』 등에 수록된 逸文을 수집하여 역주를 행한 것인데, 『三國遺事』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있어 『三國遺事』의 사료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재료가 될 것이다.

  『古代東アジアの知識人崔致遠の人と作品』(濱田耕策 편, 九州大學出版會, 2012)는 역사학, 문학, 서지학 연구자가 모여 최치원과 그의 작품을 多角的에서 연구한 것이다. 특히 일본 平安시대에 편찬된 漢詩集 『千載佳句』에 존재하는 최치원의 시를 해석한 성과가 주목된다.

 

③ 중국 사서 

이 분야에서는 발해사와 관련된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 중 石井正敏(『日本渤海關係史硏究』, 吉川弘文館, 2001)와 酒寄雅志(『渤海と古代の本』校倉書房, 2001)의 논저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는데, 특히 사료 연구를 중요시한 글들은 다음과 같다. 신라나 발해의 대외 관계를 연구한 古畑徹는 『唐會要』의 사료적 성격을 분석하기도 했고,(古畑徹, 2001) 張憲章 『渤海國記』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古畑徹, 2016) 赤羽目匡由는 역사 지리적 고증을 중시하면서 발해사와 관련된 논고를 발표하였는데 이들을 묶은 것이 『渤海王國の政治と社會』(吉川弘文館, 2011)이다. 여기에는 賈耽 『古今郡国県道四夷述』의 逸文을 통해 발해와 신라의 관계를 분석한 바도 있고, 『新唐書』 渤海伝의 교통로 기록에 대한 연구도 행한바 있다.

이상으로 사료 연구를 중심으로 지난 10년 내지 20년 동안 일본 학계에서 발표된 한국 고대사 연구 성과를 소개하였다. 근래 묘지명이나 목간 등 새로이 발견된 출토자료가 많기는 하지만, 사료 연구의 성과들을 살펴보니 새로운 사료뿐만 아니라 기왕의 문헌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와 동시에 사료 분석이 여전히 一國史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한국사를 한다고 한국 사료만, 일본사를 한다고 일본 사료만, 중국사를 한다고 중국 사료만 가지고 하는 식의 연구는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론, 세계관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료 해석의 차원에서도 동아시아적 시각과 같은 거시적 방법론이 중요하다. 일본 학계에서의 사료 연구도 그러한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참고문헌】

(1)-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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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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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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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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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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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 관리자 | 등록일 : 2017-08-02 16:44:40 | 조회 :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