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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사’를 넘어서 | 연구소



위대한
역사를 넘어서



김아람
(한국현대사 연구자)



한국 고대사 연구가 식민사관에 근거한다고 규정하고
, 고대 국가의 영역을 무리하게 확장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벌어지며 그에 대한 반박이 본 연구소의 콜로키움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소장 연구자들의 연구논저(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가 큰 관심을 받고 있고 인터뷰, 팟캐스트 등을 통한 학계 외부와의 소통도 늘었다. ‘위대한 고대사를 지향하며 그간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학계와 연구자를 식민사학()으로 단정하는 일은 위험하고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동북아 역사지도 사업이 석연치 않은 과정에서 중단되었고, 하버드대 고대사 연구 지원도 그러했다. 역사 영역에서 정부가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추진 과정은 공정하고, 합당한 절차에 근거해야 하고, 연구 내용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복원한 것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는 문제제기가 이루어고 있는 만큼 정부와 관련 기구에서는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업의 성과를 공유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현대사 연구자인 필자는 그간의 고대사 파동과 관련하여,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세부적인 사실을 정확히 파악한다고 자신할 수 없고, 논쟁에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유사 역사학또는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규정하는 부류가 추구하는 위대한 역사가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 그것은 어느 특정 시대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 무겁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Keith C. Barton 교수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역사
·사회 교육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키쓰 바튼(Keith Barton) 교수는 국내의 한 역사교육과 초청 특강에서 역사교육의 목표가 세 가지라고 하였다. 민족·국가주의(nationalism)로 치환되는 집단적 충성심(Group Royalty), 학문 분야로서의 역사 이해(Disciplinary Understanding), 시민적 참여(Civic participation)가 그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이 세 가지가 충돌하지 않는가하는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시민적 참여는 국가에 저항해 온 과정이었고, 최근의 촛불혁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을 보아도 그러하다.

그러나 시민의 항쟁은 국가를 벗어나는 것이 아닌 민주적인 국가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이기도 했고, 발전하는 국가를 상상하는 데에서도 기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후 파괴와 절망 속에서 재건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과제는 국가와 시민이 모두 공유하였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낸 오늘은 종종 기적’, ‘위대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현대사의 연구사적 흐름에서는 국가의 독재와 폭력에 대비되는 시민의 치열한 저항을, 경제성장의 배경에서 국가보다 국민의 역할을 강조해오고 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대통령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여겨진다. 어쨌든 고대사에서 위대함이 무리한 사료 해석에 따른 영토 연고 의식으로 표방되고 있다면 현대사에서는 정치경제의 발전 자체가 위대한 역사가 되어 왔다.

한국 현대사에서 시민의 성장과 민주적인 사회 발전이 지니는 의미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리한 왜곡이나 해석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역사상을 오히려 뒤집으려는 시도가 현대사 해석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앞으로 무엇이 성장이고 발전일까 질문한다면 그 답은 과거와 동일하지 않다. 이제는 과거의 위대함을 당연시하던 것을 넘어서는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람들로 보였던 시민 중에는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는 국민 사이의 억압과 착취도 존재하고 있었다. 국가는 단일한 주체로 보이기도 했지만 국면과 사안에 따라서, 부처와 기관에 따라서 다른 움직임을 보였으며 국민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는 더욱 복잡하였다. 앞으로 쓰일 현대사는 어떠한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와 연관될 수밖에 없고, 그 가치는 복합적이고 복잡하다. 때문에 과거의 성취를 긍정하는 것 뿐 아니라 과오를 반성하는 역사 인식이 있을 때 더 나은 사회와 국가를 그려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무리하게 고대 국가의 영토가 광활했다고 하면서 강조하는 그 위대함은 어떠한 미래적 가치를 지니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식민지 경험에서 보았듯 패권과 팽창은 복속과 수탈의 뒷면이었고, 그 역사의 상흔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특정한 의도로 고대사를 도구화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실에 근거하여 쓰인 현대사의 발전 과정에서도 위대한 역사를 다시 성찰할 때가 되었다. 반성과 성찰을 누락하는 역사 서술이 일으키는 문제는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필진 : 관리자 | 등록일 : 2017-07-25 13:13:59 | 조회 : 914